양빈사건, 중국의 두 메시지
	2002-10-11
양빈사건, 중국의 두 메시지 중국 당국은 북한이 신의주 특별행정구역 장관으로 임명한 양빈(楊斌)을 탈세와 주가조작, 부동산투기 혐의로 가택 연금해 북한의 개방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신의구특구를 대외개방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려던 북한으로서는 ‘믿었던’ 중국에 ‘발등을 찍힌’ 격이다. 잘 알려진 대로 북한은 신의주특구를 ‘북한의 홍콩’으로 만들어 거대한 배후 시장인 중국을 공략하고 단둥(丹東)을 그 창구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준비되지 않은 결혼’에서나 있을 법한 외교적 사건이 북한과 중국간에 발생했다. 결혼은 일방적으로 이뤄지기 어렵고, 상대방이 이해해 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는 성사되지 않는다. 중국의 반응을 보면 북한은 중국의 의향을 불문에 붙이고 신의주와 단둥의 혼사가 무난할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북한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고, 이번에 보여준 중국의 외교적 행위는 우리에게도 많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우선 중국의 행위는 북한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켰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콴시’(關係)에서 ‘미엔쯔’(面子ㆍ체면)를 매우 중시한다. 그런 중국이 북한 최고인민대표대회 상임정치위원회가 임명한 양빈 장관을 연금해 북한 최고수뇌부의 판단과 결정을 깡그리 무시해 버렸다. 이번 사건은 북중 양국이 서로 주장해 온 ‘혈맹관계’의 진의에 의문을 던지게 할 정도로 심각한 사태다. 특히 11월 권력을 이어받을 중국의 ‘제4 세대’지도체제는 북중 양국간 역사적 공감대가 부족해 앞으로 펼쳐질 중국의 대북정책이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또 동북아에서 중국의 ‘대국적 위상’을 실감케 했다. 중국은 80년대부터 끊임없이 북한측에 개혁ㆍ개방을 권유했으나, 그 방향은 중국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라는 게 이제 분명해졌다. 동북아에서 차지하는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북한의 개혁ㆍ개방은 동북아 ‘대국’인 중국과의 사전 협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또 전통적으로 접경지대 문제에 민감한 중국으로서는 단둥이 신의주특구의 창구가 되는 것에 대해 지극히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외국인이 신의주를 무비자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단둥도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양국간에 사전 협의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의 신의주특구 계획을 적극 지지할 수 없는 사정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북한의 개방 뿐만 아니라 남북한철도와 시베리아철도가 연결되는 우리의 대륙횡단철도 연결사업에도 중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이번 사건은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조짐을 제시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중수교 10주년을 맞은 지금, 한중 및 북중 관계가 ‘밀월’이나 ‘정경분리’라는 외교적 수사로 정리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탈북자 문제나 마늘 분쟁, 양빈 사건 등에서 입증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외교문제를 국익에 입각한 ‘실리 추구’원칙 하에서 처리하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당연히 한국 또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자세를 유지ㆍ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의 차기 지도자들이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로 구성될 것이므로 중국의 실리 외교는 대 한반도 정책에서 더욱 강력한 기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이제 중국에 대해 보다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원칙과 입장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중국을 고려하지 않은 대 북한, 대 동북아 정책과 전략은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경의선 복구사업이 완료되더라도 중국을 무시했다면 제 기능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양빈 사건의 교훈이다. ‘준비된 결혼’이 ‘행복한 가정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은 북중 관계에서만 아니라 한중 관계에서도 자명하다. 주재우 (한국무역연구원 연구위원) 출처 - 한국일보 2002. 10. 11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