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갈등 ‘투쟁’보단 ‘토론’을
	2002-10-10
교육갈등 ‘투쟁’보단 ‘토론’을 전국 초등학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오는 15일 실시 예정인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두고 논란이 많다. 교육부는 읽기ㆍ쓰기ㆍ셈하기 등의 3개 영역에서 기초학력을 평가하여 최소한의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에게 보충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 목적이며 이것은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며 강행할 태세이다. 반면 일부 교원단체와 시민 단체에서는 개인별 학교별 서열화와 경쟁을 부추기며 시험에 치우친 교육으로 인성 교육의 마비를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전교조는 진단평가 철회를 위한 조합원 집회를 가졌고, 시험을 강행할 경우 관련 업무를 거부할 것이라며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논란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논쟁을 통하여 상대방의 입장을 알게 되고 가능한 타협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논쟁이 이처럼 생산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서로 귀를 막은 채 자기 목청만 높이는 식이 되기 십상이다. 이번 기초학력 진단평가에 대한 논란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슈에 대한 ‘토론’은 실종되고 자기 입장을 관철하려는 ‘투쟁’만이 보이고 있다. 무릇 정책에는 목적하는 순기능이 있고 이에 따르는 부작용도 있기 마련이기에, 이 두 가지를 잘 저울질하여 균형있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경우에는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평가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우려되는 부작용은 얼마나 심각할 것인지 차분하게 따져보는 일이 될 것이다. 제대로 발전한 민주사회라면 이에 대해 전문가들이 객관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이것이 여론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는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토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껏해야 교육부의 홍보 자료나 이에 대한 감정적 비난만이 난무하는 형편이다. 이러한 현실에는 전문가들의 소심한 태도도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교육부가 이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 관여하고 조언한 교육 전문가들이 있을텐데, 공개적으로 학력평가 실시를 변호하고 나서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혹시라도 정권 말기에 교육부와 교원단체 사이의 갈등에 끼어드는 것이 개인적으로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면 이는 지식인으로서의 직무유기이다. 교육은 정권을 뛰어넘는 민족의 문제라고 항상 말해오지 않았던가. 또한 교육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측에서도 이상과열 현상만을 부각시켜 여론을 끌고 가려 하기보다, 전문가답게 학생들의 기초학력 수준 저하를 막고 학습 지진아를 도와줄 대안에 대하여 진지하게 토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교육에 대한 토론은 과거에도 항상 이처럼 편가르기 싸움처럼 진행되었기에, 서로 상처만 입었지 발전적인 의견 수렴을 이루지 못하였다. 심지어는 이념에 따라 기본적 사실에 대한 인식도 다른 형편이다. 예를 들어 수능이 어려우면 과외가 극성을 부린다고 한 편이 주장하면, 지난 몇년간 수능은 쉬웠지만 과외는 오히려 늘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평준화 때문에 학력이 저하되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학력이 오히려 높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자기 입장에 맞는 사실만 편향되게 보고 상반되는 증거에는 눈을 감는 지적 애꾸눈 노릇이 계속되었기에, 토의의 진전은 없고 교육정책 방향 자체가 사회분위기에 따라 오락가락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병에 걸린 우리 나라 교육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증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어느 편에 속해 있든 관계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적 냉철함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실상이 아무리 가슴 아프고 우리 이상과 어긋난다 해도,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이제는 이념에 충실한 ‘투쟁’보다 사실에 기초한 ‘토의’를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나. 오세정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2. 10. 10 아침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