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평가를 아느냐”
	2002-10-04
“너희가 평가를 아느냐” 전국 초등학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부의 ‘기초학력진단평가’를 놓고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학력평가를 실시하려는 교육부의 입장은 기초학력이 형성되는 시기인 초등학교 3학년 연령층을 대상으로 읽기·쓰기·셈하기 등 3개 분야에 걸쳐 학력진단평가를 실시하고 드러난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교원단체, 시민단체들의 시각은 이번 교육부의 평가가 학교 간 서열화와 경쟁을 부채질하는 학교교육 역기능에 대한 우려를 내세워 이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논쟁의 와중에 일선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학력시험이 부활되고 있고 사설 업체의 기초학력평가 대비 예상 문제집이 팔려 나가기 시작하며 동네 보습학원 등에서는 시험대비반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된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 제도는 장단점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마치 요지경(瑤池鏡)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정답이 존재하기보다는 제기된 문제를 보는 개인이나 이해집단의 견해에 따라 상반된 주장을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하는 문제는 요지경 상황 속에서 절대정답을 찾으려는 데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주어진 사회문제의 결론은 대부분 목소리 큰 쪽의 판정승으로 끝이 난다는 점이다. 국가의 법 조항 위에 군림하는 국민정서법(?)이 작용하고 있고 언론의 선정적 보도 또한 그 역할을 일부분 담당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목소리를 규합하기 위한 각종 그럴듯한 명칭의 단체들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교육평가를 전공하고 있는 학자들의 ‘평가’에 대한 정의와 그 기능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평가는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활동이라는 점, 전개되고 있는 정책이나 프로그램의 목표달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기능, 그리고 수집된 자료를 통해 얻어진 결과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활동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같은 평가의 원론적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학교교육 정책이 아무리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에 초점이 모아진다 하더라도 학생들의 기초학력에 대한 평가 또한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학생들의 평가에 대한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평가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실시되고 있는 미국 초등학교에서의 평가 문화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기초학력평가 전날, 학교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내일 기초학력 평가가 실시되니 오늘밤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거라.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편안한 복장을 하고 아침식사를 꼭 하고 오너라. 이번에 치르는 학력평가는 학교 성적표에 반영되거나 남과의 경쟁 시험이 아니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초 학력을 진단하기 위한 일종의 건강검진 신체검사와 같은 것이란다.” 지금 우리사회가 대립양상을 보이는 초등학생 기초학력평가의 문제는 이를 철회할 것인가 강행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간 서열화와 경쟁 등의 역기능적 요소들을 평가 결과의 활용단계에서 배제시킬 방안의 마련이 핵심이다. 일부 단체에서 시험 중단을 위한 시험업무 거부 투쟁계획이 발표될 것이란 언론 보도를 접하며 평가는 곧 서열과 경쟁을 의미하고, 약점을 노출시키는 기능만을 부각하여 몰아붙이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평가 문화가 언제쯤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인지 씁쓸해진다. 오성삼 (건국대 교육대학원장ㆍ한국평가학회장) 출처 - 조선일보 2002. 10. 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