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저금리가 키웠다
	2002-09-27
가계빚 저금리가 키웠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4분기 가계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는 약 400조원에 달한다. 가구당 부채규모가 2700만원이다. 또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70%에 이른다. 최근 가계부채의 증가속도는 연 30%가 넘는다. 정책당국은 우리나라의 가계빚이 근래에 빠른 속도로 늘고 있으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수준에 비하면 낮다고 한다. 따라서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그런가운데 정부가 가계부채의 증가를 부추기거나 방치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과연 언제까지 그러한 안이한 주장을 계속할 것인가.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이면에는 높은 소비증가와 부동산투기 등이 도사리고 있다. 정책당국은 미국 일본 등 세계경기가 침체한 가운데에도 국내경기가 상당한 회복세를 보이고 선진국 경기와는 차별화된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사상 최저 금리수준을 유지하면서 유동성을 과도하게 공급해왔다. 결국 저금리와 과잉유동성은 소비를 늘리고 부동산투기를 가열하고 있다. 최근에 정부는 부동산투기대책을 끊임없이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투기의 근본원인보다는 투기증상만 마지못해서 문제삼는 듯하다. 부동산투기나 빈부격차 등을 가장 혐오할 듯한 '국민의 정부'가 다른 어느 정권에 못지않게 '한탕'을 벌이는 행태는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근래의 소비증가 추세도 심각한 문제다. 1995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저축률은 35.5%수준이었다. 그러나 2000년에 32%로 떨어지더니 최근에는 28% 수준을 밑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사회로 되어가면서 저축률 하락과 소비증대가 불안한데 정부는 무얼 믿고 소비를 부추기는지 알 수 없다.당장 빼먹기는 소비가 좋고 또 부동산 경기를 회복시킨다고 투기를 조장해 왔지만 이제 정부는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다. 금리가 최저수준인데도 기업의 투자는 부진하다. 우리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수출은 크게 늘어날 전망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선진국의 경기부진, 전쟁위험과 국제유가 불안, 국제금융시장 불안 등 대외경제여건은 너무 불안하다. 설상가상으로 국내소비와 내수확대도 이제 가계부채 급증으로 벽에 부딪히고 있다. 그런데도 가계부채의 급증을 억제하고 금융시장 불안을 막기 위해서 금리를 조절하기도 자신이 없다. 신용카드빚 등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난 주요원인은 금리인하라고 본다. 가계소비가 늘어난 것도 마찬가지다. 부동산투기의 원인도 저금리 때문이다. 금리를 올리면 소비와 가계부채도 줄어들고 부동산투기도 진정될 것 같다. 그러나 금리인상이 대규모 가계부채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개인신용불량자를 양산하며 개인파산을 급증시킬 우려가 있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소비가 위축되고 돈 빌려서 부동산 투기하는 경향이 진정되며 시장의 과잉유동성도 일부 회수될 것이다. 그러나 그 바람에 경기가 또다시 침체에 빠지면 어떻게 하겠는가. 특히 경기침체를 감내하기에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시기라고 하겠다. 최근에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리정책에서 상반되는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한은은 가계부채, 소비증대, 부동산투기 문제의 해결과 물가안정을 위해서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는 자신이 없다. 그동안 국민들의 씀씀이를 부추기고 빚을 늘리도록 권해 왔고 사실상 부동산투기를 조장해 왔는데 그 덕택에 경기가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국내외 경제여건은 매우 불안해졌다. 그래서 이미 엎지른 물을 주워담기 어렵다는 것인가. 李在雄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2. 9. 2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