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륙한 '출산파업'
	2002-09-18
한국상륙한 '출산파업' 베이비 스트라이크, 이름하여 '출산 파업'이 드디어 한국 사회에도 상륙한 듯하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표어가 등장했고 '가족계획은 이웃과 상의하여 두집 건너 하나'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리곤 했었는데 어느 새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를 우려하고 있음을 보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출산은 국가적 차원에서는 인구요, 가족적 차원에서는 자녀를 의미하는 현상이다. 1960∼70년대 한국사회는 높은 출산율이 경제성장의 압력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판단 하에 강도 높은 출산억제 정책을 펼쳤다. 덕분에 가임기 여성의 평균 자녀수가 1960년의 6명을 정점으로 40여년만에 1.47명으로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수치는 미국의 2.1명, 프랑스의 1.9명보다 낮은 것이다. '산아제한' 실시 초기 인구학자들로부터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아선호로 인해 출산율 감소가 서서히 진행되리라는 예측이 나왔다. 그러나 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한편 출산기피 현상을 가족 차원에서 조망해 보면 이는 자녀의 효용가치 감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녀의 효용가치 감소란 한마디로 농경사회 자녀가 노동력이었다면 오늘날의 자녀는 소비재적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의 자녀교육은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주자로 비판의 대상이 된지 오래요, 입시중심 교육제도로 인해 국민총생산(GNP) 대비 교육비 지출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군(群)에 속한다는 사실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자녀의 효용가치 감소의 또다른 측면은 가족의 부양 기능 약화와 직결되어 있다. 지금도 후진국에서 출산율이 높게 유지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많은 자녀중 능력 있는 자녀가 자신들의 노후를 보장해 주리라는 기대가 작용한 결과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자녀, 자녀가 자신들의 노후를 보장해주리라 기대하는 부모 모두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어느 가족이 다산(多産)을 다복(多福)으로 받아들이겠는가. 문제는 국가의 인구정책과 가족의 합리적인 전략이 충돌을 일으키면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예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산율 감소는 노동력 수급의 불균형과 경제활동 인구의 고령화를 가져옴으로써 세계화-정보화의 급물결을 타고 있는 무한경쟁의 세계시장에서 우리의 적응력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시점에서 출산율 감소가 진행될 경우 부양비 부담을 가중시킴으로써 노인문제를 심화시킬 가능성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서구 복지국가에서는 출산율 증가를 위해 다양한 가족친화적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자녀양육의 책임을 여성으로부터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가족이 공유하는 제도적 지원을 확대해가고 있고 일과 가족 혹은 취업과 양육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극복하면서 두 영역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모색하는 기업문화를 확대해가고 있다. 이제 출산율 감소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신중한 검토를 통해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는 듯하다. 서구 사회가 지나온 길을 압축적으로 경험해 온 우리로서는 서구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되 한국적 가족문화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정책개발을 기대해 본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2. 9. 18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