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27일 수원지방법원은 삼성전자의 전·현직 임원 11명에게 1000억원에 가까운 손해배상책임을 선고했다. 주주대표소송을 주도한 시민단체는 이 판결이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고 한국식 그룹경영 관행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반면, 재계에서는 향후 경영자들의 소신있는 경영 판단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판결은 어디까지나 법원의 몫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번 판결의 쟁점과 파급효과에 대해 의아해하고 있다.
첫 번째 쟁점 사항은 고도의 위험이 수반되는 경영상의 판단을 사후적인 결과만으로 판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일부에서는 이사들의 합리적인 판단이라도 성과가 좋지 않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며 법원의 논리를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기업인들에게 결과만을 놓고 법적 책임까지 부과한다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경영자의 선관주의 의무(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이지 완벽한 예측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주대표소송의 천국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에서는 판결의 근거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준수한다. 이사들이 ①자신의 이익을 우선시 하지 않고 ②이사회 구성이 사외이사를 포함하여 독립적이며 ③의사결정이 충분한 정보에 근거하는 경우, 사후적으로 실패한 경영판단이라도 법원은 원칙적으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해당소송과 이해관계가 없는 인사들로 특별소송위원회를 구성하여 경영판단의 적정성을 판단하게 하고 법원은 위원회의 의견을 참고한다. 그러나 이번 주주대표소송에서 이러한 세심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법원은 또한 이사회가 채 1시간도 안 되어 이천전기의 인수를 결정했기 때문에 졸속결의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기업경영의 실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주장을 수긍하기 어렵다. 소규모 투자라도 해당분야의 실무 전문가들이 밤을 새워 기획하고 시뮬레이션을 반복하여 이사회에 제출하는 것이 기업의 상례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지분 정리를 통한 기업구조조정으로 회사와 소액주주가 과연 피해를 보았는가에 대한 판단이다. 만약 이천전기의 퇴출을 결정하지 않았거나 삼성종합화학의 지분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삼성전자 주주들은 이익을 얻었을 것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아마도 서로 책임을 미루고 결정하지 않았다면 경영자들은 지금과 같은 곤경에 처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양사(량사)의 부실로 더 큰 손실을 보았을 수도 있다. 기아와 대우 사태가 그 사례들이다. 삼성종합화학 주식이 저가(저가)에 매각되었다는 주장도 해당 업체가 비상장기업이고 출자제한 규제에 쫓기고 있었다는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 경제위기로 외부의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적정한 시장가격은 과연 얼마인가. 같은 논리라면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과 기업을 헐값에 매각한 모든 의사결정자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법규가 신설되어 이제 경제문제 중 상당수는 사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부터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이러한 추세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우려되는 점은 아직도 우리 사회는 기업의 경제행위를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선악으로 구분하는 시각이다. 여기에 경영판단에 대한 손해배상의 책임까지 짊어져야 한다면 과연 이 땅의 기업가정신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누구나 만류했던 사업을 선택하고 한국경제의 자랑으로 키워낸 반도체, 자동차, 철강의 신화는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접어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경제의 원동력을 기업가의 모험과 혁신정신에서 찾고 있는 슘페터의 주장을 다시 되돌아 볼 때이다.
기업구조조정도 처벌하나.....
------삼성전자 임원 배상판결 "반대"------
작년 12월 27일 수원지방법원은 삼성전자의 전·현직 임원 11명에게 1000억원에 가까운 손해배상책임을 선고했다. 주주대표소송을 주도한 시민단체는 이 판결이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고 한국식 그룹경영 관행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반면, 재계에서는 향후 경영자들의 소신있는 경영 판단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판결은 어디까지나 법원의 몫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번 판결의 쟁점과 파급효과에 대해 의아해하고 있다.
첫 번째 쟁점 사항은 고도의 위험이 수반되는 경영상의 판단을 사후적인 결과만으로 판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일부에서는 이사들의 합리적인 판단이라도 성과가 좋지 않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며 법원의 논리를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기업인들에게 결과만을 놓고 법적 책임까지 부과한다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경영자의 선관주의 의무(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이지 완벽한 예측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주대표소송의 천국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에서는 판결의 근거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준수한다. 이사들이 ①자신의 이익을 우선시 하지 않고 ②이사회 구성이 사외이사를 포함하여 독립적이며 ③의사결정이 충분한 정보에 근거하는 경우, 사후적으로 실패한 경영판단이라도 법원은 원칙적으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해당소송과 이해관계가 없는 인사들로 특별소송위원회를 구성하여 경영판단의 적정성을 판단하게 하고 법원은 위원회의 의견을 참고한다. 그러나 이번 주주대표소송에서 이러한 세심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법원은 또한 이사회가 채 1시간도 안 되어 이천전기의 인수를 결정했기 때문에 졸속결의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기업경영의 실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주장을 수긍하기 어렵다. 소규모 투자라도 해당분야의 실무 전문가들이 밤을 새워 기획하고 시뮬레이션을 반복하여 이사회에 제출하는 것이 기업의 상례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지분 정리를 통한 기업구조조정으로 회사와 소액주주가 과연 피해를 보았는가에 대한 판단이다. 만약 이천전기의 퇴출을 결정하지 않았거나 삼성종합화학의 지분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삼성전자 주주들은 이익을 얻었을 것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아마도 서로 책임을 미루고 결정하지 않았다면 경영자들은 지금과 같은 곤경에 처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양사(량사)의 부실로 더 큰 손실을 보았을 수도 있다. 기아와 대우 사태가 그 사례들이다. 삼성종합화학 주식이 저가(저가)에 매각되었다는 주장도 해당 업체가 비상장기업이고 출자제한 규제에 쫓기고 있었다는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 경제위기로 외부의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적정한 시장가격은 과연 얼마인가. 같은 논리라면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과 기업을 헐값에 매각한 모든 의사결정자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법규가 신설되어 이제 경제문제 중 상당수는 사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부터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이러한 추세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우려되는 점은 아직도 우리 사회는 기업의 경제행위를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선악으로 구분하는 시각이다. 여기에 경영판단에 대한 손해배상의 책임까지 짊어져야 한다면 과연 이 땅의 기업가정신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누구나 만류했던 사업을 선택하고 한국경제의 자랑으로 키워낸 반도체, 자동차, 철강의 신화는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접어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경제의 원동력을 기업가의 모험과 혁신정신에서 찾고 있는 슘페터의 주장을 다시 되돌아 볼 때이다.
김석준 (비전 한국 공동대표·이화여대 교수 )
출처 - 조선일보 시론 2002.01.03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