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합산과세와 헌법적 자치
	2002-09-02
부부합산과세와 헌법적 자치 헌법재판소는 최근 자산소득의 부부합산과세를 규정한 소득세법 제61조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자산소득의 부부합산과세 제도는 부부의 이자소득, 배당소득 및 부동산 임대소득을 주된 소득자의 소득에 합산, 과세하는 것이다. 소득세는 과세표준이 커질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초과누진세이므로 부부의 소득을 합산하면 합산하지 않는 경우보다 높은 세율이 적용돼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 소득세법은 자산소득은 근로소득보다 무겁게 과세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자산을 분산시킴으로써 소득을 분산시켜서 높은 세율의 적용을 회피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부부합산과세 제도는 결과적으로 기혼자를 미혼자에 비해 세제상 불리하게 취급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예컨대 각자 소득이 있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고 그 중 어느 한쪽이라도 자산소득이 있으면 그 자산소득은 둘 중 자산소득을 제외한 종합소득이 많은 주된 소득자의 소득에 합산되게 된다. 그 결과 높은 세율이 적용돼 세부담이 늘어난다. 이 때문에 부부합산과세 제도가 독일에서는 1957년 연방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았고, 일본에서는 1988년에 입법으로 폐지됐다. 다만, 미국에서는 결혼으로 인하여 불리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도 위헌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헌재의 이번 위헌결정도 기혼자의 차별대우가 혼인과 가족생활의 보장을 규정한 헌법 제36조 제1항의 규정 내용에 위반된다는 점을 주된 논거로 삼고 있다. 혼인이 세법상 불이익을 받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는만큼 헌재의 결정은 타당하다. 특히 헌재가 조세 회피 방지 등의 ‘행정기술적인 관점’이 헌법적 가치에 우선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정책적 당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잘 법치주의가 무시되는 우리 현실에 비춰 볼 때 매우 신선하다. 어쨌든 이번 위헌결정으로 부부합산과세 제도에 관한 소득세법 규정은 효력을 상실했고, 과세 당국은 이를 대체할 입법을 하루빨리 준비해야 하게 됐다. 이번 헌재 결정이 자산의 분산을 통한 조세 회피를 방지해야 한다는 부부합산과세 제도가 달성하려고 한 정책 목적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세 당국으로서는 헌법의 범위 안에서 조세 회피 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와 관련, 다음 세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첫째, 조세 회피를 위한 비정상적인 부부간 재산 분산 행위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조세 회피의 결과는 혼인이 아니라 증여 등 비정상적인 재산 분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합산 과세라는 우회적인 방법이 아니라, 재산 분산 행위 자체에 대하여 과세하는 방법을 택하는 정공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조세 회피를 장려하겠다는 것이 헌재의 뜻이 아닌 만큼, 이와 관련한 좀더 효율적이면서도 합헌적인 과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금융소득 종합과세 제도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자산소득 중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은 금융소득에 해당하므로, 부부합산과세 제도는 사실 금융소득 종합과세 제도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이번 결정은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기준을 결정함에 있어서 부부의 금융소득을 합산하도록 규정한 소득세법의 규정도 위헌이라고 판단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헌재 결정은 어떤 식으로든 금융소득 종합과세 제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범위는 확대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과세 당국으로서는 이 기회에 적어도 지금보다 종합과세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셋째, 헌재 결정으로 구제되는 납세자의 범위를 넓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 헌법 재판 제도의 특성상 이번 결정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납세자는 이미 불복 절차를 밟고 있거나 앞으로 밟을 수 있는 납세자에 그친다. 잘못된 세법에 따라 소득세를 신고납부하고 불복기간을 놓친 성실한 납세자는 현행법상 구제받을 길이 없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과다. 입법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요컨대, 모든 국가의 행정 작용은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하고, 아무리 목적이 옳더라도 헌법적 가치를 해치는 내용의 입법은 그 효력을 가질 수 없다는 평범한 법리가 이번 헌재 결정의 핵심이다. 우창록 (변호사) 출처 - 문화일보 2002. 8. 3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