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결정국 어떻게 푸나
	2002-08-30
부결정국 어떻게 푸나 무책임 정치 벗어나야 두번에 걸친 총리지명자 인준 거부와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안 제출로 인해 정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것은 대선을 앞둔 각 정치세력의 이해관계가 빚은 결과일 뿐 새로운 정치를 생산하기 위한 고통이라 하기는 어렵다. 정치의 주체여야 할 국민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이같은 소모적 갈등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두 차례의 기획시론을 마련했다. 장상 총리지명자에 이어 장대환 총리지명자가 국회 인준을 받지 못했다.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안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 가결시키려는 반면 민주당은 표결 자체를 실력으로 저지시키려 하고 있다. 또 야당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에 관한 검찰의 어떠한 발표에 대해서도 적어도 한 측에서는 극도의 불신을 보일 태세다. 법치적 민주체제 유지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총리, 법무장관, 검찰이 공석이거나 아니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의 민주정치는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리현상이 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데에 있다. 총리지명자 부결에 결정적으로 역할을 한 다수당(多數黨)이나, 또 흠결이 있는 사람을 지명한 집권(執權)세력이나,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여러 사람의 공동결정과 공동결제가 잘못되더라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공동(共同)책임은 곧 무(無)책임'이라는 인식이 만연돼 있다. 이같은 무책임의 정치구조에 기대 각 당은 국민에 대한 책임보다 정파적 이해를 위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동책임이 아닌 개별적 책임소재를 명확히 규정하는 자유주의적 법규는 물론 관행도 정착돼야 한다. 사실 선거도 책임정치를 구현시키기 위한 장치다. 물론 선거정치란 그 속성상 승리가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의 문제점은 모든 정치적 행위가 선거를 의식한 합리적 행위라기보다 선거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라는 데에 있다. 유권자로부터 아무리 욕을 들어도 경쟁자가 더 욕을 듣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평판과 지지도를 높이려는 +α의 전략보다, 상대방의 평판과 지지도를 깎아내리려는 -β의 전략이 판을 치고 있다. 누구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도 '털어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없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 잘못된 결과를 차후에 방지하려면 털어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책임을 묻는 적절한 조치들이 정치적으로 해석돼 박해니 탄압이니 주장된다. 죄지은 사람을 무조건 사면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털어도 다시 먼지가 쌓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신에 깨끗한 사람에게 먼지가 붙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없애야 한다. 양비(兩非)론 또는 양시(兩是)론적 기회주의자는 책임성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레퍼리(referee) 기능이 있어야 한다. 사회불신이 팽배한 현실에서 공적 영역을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고서는 책임에 대한 응분의 조치도 정치적 탄압으로 강변된다. 여전히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투명성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거짓말 공방이나 말 바꾸기도 줄어들 것이다. 집권세력은 총리서리제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집권세력과 관계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총리를 지명할 필요도 없다. 집권세력과 전혀 알지도 못하고 또 집권세력에 충성하지 않아도 도덕적 흠결이 없으면서 동시에 행정능력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지명하면 된다. 공직자의 임명이나 인준은 중립적 임명과 객관적 인준이 돼야 하나, 현실은 임명권자와 가까워야 임명되고 또 임명권자와 가까우면 인준되지 않고 있다. 정권 말기는 전리품(戰利品) 배분의 차원 또는 오기(傲氣)로 사태를 밀어붙일 때가 아니다. 현실적 정권 말기와 마찬가지로, 잠재적 정권가능성의 다수야당도 오만해서는 안된다. 권한의 크기에 준하는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소수집권당이든 다수야당이든 국민을 볼모로 해서는 안된다. 힘있는 자가 벼량끝 전략으로 대처하면 그만큼 지불할 대가도 크다. 책임이라는 민주정치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를 다시 한번 더 되새길 때다. 金哉翰 (한림대 교수,정치학) 출처 - 중앙일보 2002. 8. 3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