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해야 할 신당 표기
	2002-08-26
신중해야 할 신당 표기 실체 없어 구상,모임,추진 붙여야 국제기사 흐름 이해 신경썼으면 때는 선거 정국이다. 그 덕에 교육이나 공적자금 같은 진짜 정치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이른바 '병풍' 공방,'신당' 논의만 무성하다. 그런데 병풍이라는 말이야 조어(造語)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신당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물론 정당정치의 전통이 약한 우리 현실에서 '구당'의 분파들이 간판만 바꿔 만든 '헤쳐모여' 정당을 관행상 신당으로 불러왔고, 그래서 한국의 신당은 대통령 후보를 내기 위해 급조하는 정당 정도로 이해돼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구상 단계에 있는 정당을 기존 정당인 것처럼 신당으로 표기하는 관행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취임이 확실한 대통령 당선자라 해도 미리 대통령으로 표기하지 않는 것처럼 창당될 게 확실한 정당이라 할지라도 아직 실체가 없는 단체를 신당으로 통칭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짧고 선명한 표현을 구사해야 하는 신문의 속성에 비춰 보면 이런 명명법은 별 문제가 없고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분당과 창당 과정에서 일어나는 세력간의 경쟁과 규합을 신당 차원의 정치행위로 본다면 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모든 아기를 '신생아'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컨대 '민주 실세들 신당 주도권 경쟁'같은 표현은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이 경우도 신당을 '창당'으로 바꾸거나 '신당 구상' '신당 추진'으로 표기해야 정확하다. 즉 '밑그림 드러난 정몽준 신당 구상'처럼 내용과 맥락에 따라 신당에 '구상'이나 '모임', 또는 '추진' 등과 같은 말을 다양하게 덧붙이는 배려를 해야 한다. 신당 구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처럼 본질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화된 용어를 철저하게 살피고 가려 쓰는 일도 현실을 보는 눈을 가다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보고서 '9.11 테러 1년, 세계의 변화'에 관한 기사(24일자 8면)는 외신 자료를 소개할 때의 '독해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 기사 제목을 '후세인 제거해도 미 더 큰 대가 치를 것'으로 뽑은 데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보고서 원문은 이라크 침공 자체를 드러내 놓고 반대하기보다는 침공의 명분과 방법이 국제법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미국이 국제법과 국제 여론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처방'이야말로 그 맥락을 해독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원정이 선례가 되는 바람에 러시아는 체첸 침공을, 인도는 파키스탄 공격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공격을 정당화하고 있어 미국의 입장에선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바꿔 말하면 '미국의 이익과 부담'이라는 견지에서 내린 처방이다. 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위해 중앙아시아의 '다섯 스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을 구슬려 군사기지와 통로를 개척한 것이나, 비민주적인 아랍국가들과 전략적으로 제휴함으로써 아랍권의 민주화를 지연시키는 정책이 오히려 이슬람 과격파의 테러를 재생산한다고 강조한 부분이나, 대 테러전쟁 관련 예산문제에 대해 우려한 것 등을 기사에 넣었다면 보고서 요지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지난 6월부터 '선제공격'이 미국 국가안보 전략의 유일한 지도원리로 확립됐다는 내용은 임박한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중요한 관련이 있는데도 누락됐다. 지면 제약이라는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런 성격의 외신자료를 보도하는 경우에는 정확한 텍스트 소개와 아울러 그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에 하는 말이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학) 출처 - 중앙일보 2002. 8. 26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