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일하려면 생산성 높여라
2002-08-12
적게 일하려면 생산성 높여라 우리나라 근로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86년에 52.5시간으로 정점 에 달한 뒤 계속 줄어들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에 잠시 늘어났다가 다시 줄어들어 작년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7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주5일 근무제가 확대되 면 더욱 빠르게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나라 저축률도 비슷한 형태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88년의 40.5% 를 정점으로 계속 하락해 작년의 국민저축률은 29%대까지 떨어졌다. 이 둘의 변화는 추세적이며 상호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가 가 많아지고 이를 즐기려면 그만큼 소비가 늘고 저축은 줄 수밖에 없 다. 88년 이후 가파른 임금 상승으로 근로자들의 소득이 크게 증가했 음에도 불구하고 가계저축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소비가 더 많이 늘어 왔다는 얘기가 된다. 경제발전의 궁극적인 목적은 삶의 질 향상에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변 화는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면에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가계나 국가나 삶의 질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꾸준한 소득 증가를 확보하는 일이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원래 뛰어난 경제학자지만 아시 아 외환위기가 일어나기 수년 전에 아시아 경제가 곧 성장의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예측해 더욱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가 그렇게 예측한 주 이유는 아시아국가, 특히 한국과 싱가포르의 경제성장은 서구 경제와 달리 생산성 증가가 아닌 노동과 자본투입의 빠른 증가에 주로 기인한 것이나 노동과 자본투입의 증가는 일정 수 준에 다다르면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 국가의 성장은 땀(perspiration)의 결과 이지 영감(inspiration)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나 싱가포르도 과거 러시아나 사회주의국가의 요소투입 증가에 의한 성장이 한계를 겪고 좌절되었던 것처럼 곧 같은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보았다. 현재 우리는 1인당 소득이 1만달러도 되지 않는 지점에 서 있다. 만약 지금 우리 경제의 생산성 수준과 저축률 그리고 노동시간 변화 추세가 지속된다면 약 10년 후가 되면 우리나라 경제 성장이 완전히 정체되거나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우리가 이제 더 이상 땀을 흘리기를 거부하면서도 국민소득을 지속적 으로 성장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은 경제 전반의 효 율성과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명료한 결 론으로 나온다. 노동시간, 저축률에서 우리가 이미 선진국 패턴으로 들어선 이상 적 어도 생산성 증가에서도 그들 수준만큼은 따라가야 장기적으로 그들 과의 경제수준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생산성 향상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로 다가서 있다. 그나마 지난 수년 간은 환율의 대폭 절하로 기업들의 수익성과 경쟁 력이 유지되어 왔으나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고 환율이 절상된다면 이 의 필요성은 더해진다.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은 우리 사회의 모든 분 야에서 동시에 접근되어야 한다. 기업 단위에서, 정부 단위에서 교육, 나아가 모든 제도와 조직 운영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일하는 습관과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출근해 신문을 보는 데, 점심식사를 하는 데, 잡담을 하는 데 하루에 몇 시간을 보내는가. 우리의 직장에서 하는 회의는 얼마나 사 전 준비가 되어 있고 효율적인가. 근로자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는 방법은 도입되어 있으며 그들의 승 진과 보수에 이것이 바로 반영되는 시스템은 일터마다 확립되어 있는 가. 직원의 재교육과 훈련제도는 어떤가. 필자의 관찰로 볼 때 이런 점에 서 우리는 선진국들의 근로습관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는 것이 사실 이다. 기업뿐이 아니다. 정부와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며 언론, 교육, 정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5년 간 반복되는 병역시비는 연일 방송과 지면을 채우면서 연간 5000 억원 마늘시장에 국민 1인당 부담이 3만원이 넘는 1조5000억원을 지 원하겠다는 대책에 대해 따지는 정치인도 없고 이를 검증하고 분석하 는 기사도 찾기 힘들다. 정부의 경제정책도 중요하지만 각 일터에서 이러한 새 풍조와 관습을 만들려는 시도가 적극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출처 - 매일경제 2002. 8. 12 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