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 함께 크려면 서로의 역할 존중을
	2002-08-03
한국언론 함께 크려면 서로의 역할 존중을 근대 이전 사회에는 성인이나 영웅이 신화화되었다면, 현대 민주사회에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롤 모델(Role -Model)이 존경받고 있다. 그러나 후진 사회일수록 상대의 조그마한 약점을 캐고, 어떻게든 비방하고 깎아내리려는 저급 문화가 만연돼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언론의 영역은 어떠한가. 경쟁사 언론인이 조금 약점이 있더라도 장점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하는 문화인가, 아니면 이분법적으로 내 편 아니면 적이고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문화가 더 거센 상황인가. 근대 개화기.일본 강점기.해방 및 분단과 권위주의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언론은 지사적인 언론인 역할을 요청했다. 서재필.송건호처럼 독립운동.민주화 운동 전선에 앞장서는 언론인이 높이 평가받았다. 그러나 사회민주화와 더불어 3김 시대를 청산하는 현 시점에서 한국 언론문화 발전을 위해 새로운 언론지도자와 롤 모델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 신문편집인협회는 현대 언론의 선구자들을 다섯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먼저 전쟁이나 위기 때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주는 언론인형이다. 대표적인 예가 뉴욕타임스의 편집인 하월 레이니스다. 그는 취임 6일째 되던 날 9.11 테러 현장에서 '변하고 있는 국가'라는 특별 섹션을 만들었고, 테러와 관련된 기사를 하루 2천건 이상 다뤄 국가 재난을 치유하는데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같은 그의 지도력으로 퓰리처상 역사상 처음으로 한 신문사가 14개 분야 중 가장 많은 7개 분야의 상을 휩쓰는 힘을 보여주었다. 둘째로 당대에 탁월한 저널리즘 능력을 보여준 언론인 유형으로 LA 타임스의 존 캐롤형을 들 수 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네 신문사에서 에디터로 근무하며 켄터키대학 농구부의 비리에 대한 탐사보도 등으로 퓰리처상을 네번이나 타는 진기록을 세웠다. 셋째로 저널리즘 세계에서 인종과 성의 진입 장벽을 허무는데 선구자적인 활동을 한 윈다 노이드 형이다. 그는 흑인 여성으로서 워싱턴포스트 등 유수 언론사에서 에디터로 맹활약했고, 후에는 프리덤 포럼에서 소수 민족이나 여성이 백인과 남성 중심의 언론세계를 개척하는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넷째로 새로운 저널리즘 가치들을 개척하는 선구자적인 언론인 유형이다. 뉴욕타임스의 아서 설즈버거 부자와 워싱턴 포스트의 그레이엄 모자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정권의 비리를 정면으로 파헤쳤고, 공익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 우편 테러범인 데이비드 카잔스키(우나바머 사건)의 성명을 게재하는 결단을 내려 범인을 체포하는데 기여한 발행인들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실천하는 언론인 유형이다. 뉴욕타임스의 아베 로젠탈은 1970년대 신문산업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섹션' 신문을 최초로 발행했다. 사라소타 헤럴드 트리뷴지의 발행인 다이앤 매패트릭은 저널리즘이 미디어 융합 시대에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유형 외에도 미국 저널리즘 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 데 앞장선 많은 언론인들이 있다. 50년대 '빨갱이 사냥'으로 불린 메카시 선풍과 정면 대결해 인권운동을 강력하게 지지한 알칸사스 가제트지의 헤리 애위모아, 미시시피 주의 흑인차별을 다룬 이다 헤르케이 등이 있다. 아직 한국 언론은 좌파와 우파, 큰 신문과 작은 신문 등으로 양분돼 이분법적인 반목과 정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정치 이데올로기에만 매달리지 말고 다양한 롤 모델을 인정하고, 평가하는 사업들을 함께 하는 성숙한 언론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겠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출처 - 중앙일보 2002. 8. 3 미디어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