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치문화 바꾸자
	2002-07-23
`여의도` 정치문화 바꾸자 그 동안 각 당이 새로운 방식으로 대선 후보와 지도자를 결정하고, 또 국회의장단을 새로 선출하자, 온 국민이 3김시대의 청산과 함께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으나 정치판은 구태의연하다. 특히 양당 대선 후보의 행보는 우리가 ‘3김식’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3김이 가신·공천권·정치자금·반독재 투쟁을 무기 삼아 오랫동안 정치판에 군림한 것처럼 이회창·노무현 후보도 8·8재보선 후보를 밀실에서 공천하는 데 동조했고, 점점 가신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충언을 듣지 않는다는 소리가 들린다. 과거 김대중과 김영삼 당시 총재들이 군부 독재의 반사 이익을 얻은 것처럼 이후보가 김대중 대통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노후보가 이후보의 결점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역주의에 연연하고 있는 모습이 3김과 다를 바가 없다. 민주화 이후에 정당 생활을 시작한 이회창과 노무현 후보가 권위주의 시기의 정치인들과 별로 다른 점이 없으니 너무나 한심하다. 그러나 이후보나 노후보만을 탓할 수는 없다. 여의도에는 자신의 정치적 원칙대로 행동하려는 정치 신인들을 잡아먹거나 길들이는 거대한 공룡이 있기 때문에 혼자만의 힘으로 당해낼 수가 없다. 판사 출신의 ‘대쪽’ 성품이나 재야 인권변호사의 높은 정치적 기상을 모두 집어삼켜 버리는 공룡이다. 이 공룡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로서 법과 제도와 인물을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국회의 날치기 법안 통과가 아무리 잘못된 처사라 하더라도 여의도에서는 ‘전에도 그렇게 했다’는 공룡의 힘으로 정당화되었다. 결국 잘못된 정치문화라는 공룡이 여의도에서 사라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치제도나 훌륭한 인물이 나오더라도 새로운 정치는 불가능하다. 정치권이 잘못된 정치문화의 핵심인 ‘권위주의 정당정치 관행’과 국회와 정당을 ‘내각제식’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고쳐야 한다.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영수회담, 장외 투쟁, 법안 날치기 통과, 하향식 공천, 당 재정의 비밀성 등이다. 예를 들면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영수회담에서 총재끼리 합의해서 주요 법안이 일사천리로 통과되면 국회의원들은 할 일이 없어지고, 총재는 제왕적 지위를 얻게 된다. 이런 권위주의 정당정치의 관행들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민주화 이후에 정치판의 인물 교체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아서 옛날 정치인들이 자기들에게 편리한 공룡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날치기 법안 통과나 영수회담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나 반대당의 장외투쟁, 당재정의 사금고화, 하향식 밀실공천 등은 사라지고 않고 있다. 여의도 정치문화의 또 다른 고질은 우리나라가 대통령제인데 내각제식으로 정당과 국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제에서 정국의 중심이 돼야 하는 국회가 파행과 표류를 거듭하는 가운데 정당만이 작동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버리고 원외에서 싸우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가 내각제 제도인 당정협의회를 하는 바람에 이 곳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면 대통령 소속 당 국회의원들은 거수기로 전락하게 된다. 더욱이 우리가 일본 내각제에서 사용하는 여당, 야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내각제와 달리 우리의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국회의 다수당이나 제1당이 되지 못하는 ‘여소야대’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현행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야당, 여당이라고 호칭하지 말고 각각 다수당 소수당 혹은 제1당 제2당 등으로 구별해야 한다. 이런 구별이 없어서 소위 여당이라고 지칭되는 대통령 소속 당이 국회 제2당이더라도 국회 구성과 운영을 책임지겠다는 잘못된 처사가 나온다. 이제 대통령이 민주당을 떠났으므로 형식논리상 민주당은 제2당의 역할만 남았다. 이렇게 대통령의 탈당으로 국정이 표류하고 있으나 국회나 국회 제1당이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기에 국회가 오랫동안 행정부나 대통령을 견제하는 데에만 익숙하여 입법을 비롯한 통치 기능이 약하다. 이런 잘못된 정치 문화를 고치지 않으면 3김 이후에도 여전히 ‘3김식’ 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2. 7. 2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