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자금, 질책보다 중요한 것
	2002-07-23
公자금, 질책보다 중요한 것 “공적자금에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解弛·모럴 해저드) 측면이 있다. 공적자금을 많이 투입하면 할수록 (부실의 원인이) 해당 기관이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 시장문제가 된다. (금융기관들 중에는) 공적자금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무임승차하려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00년 4월 당시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공적자금은 한푼도 추가조성할 필요가 없다’는 논지를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그 후 40조원의 공적자금 추가조성으로 이 전(前) 장관은 국민들을 속였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무임승차’, 다시 말해 금융기관들이 경영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핑곗거리로 공적자금 지원을 요구한다는 부분이다. 실제로 예금보험공사의 출자대상이 아닌 투신사들이 공적자금 지원을 요구하며 각계에 로비하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투신업계에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금융시장 전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반(半)협박조의 주장도 곁들였다. 터무니없는 엄포는 아니었지만 거기에는 상궤를 벗어난 부분이 있었다. 공적자금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는 인식이 없이 그저 ‘눈먼 돈’ 취급을 했던 것이다. 금융기관들의 모럴 해저드를 비난했던 정부 역시 다를 바 없다. 예금보호 대상이 아닌 은행과 투신사의 실적배당상품 운용손실 4조4158억원을 공적자금으로 메워주면서 정부가 내세웠던 핑계는 바로 ‘금융시장 붕괴우려’였다. 공적자금 관리에서 드러났던 이런저런 허술함과 방만함, 판단착오와 편법은 69조원에 달하는 원금손실의 한 원인이 됐다. 공적자금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이 “누군가 착복했다”고 생각하며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도 있다.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 위기를 맞아 우리 경제의 성장기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최후의 처방전이 바로 공적자금이었다. 과거 수십년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적됐던 우리 경제의 부실을 청산하기 위한 비용이기도 했다는 시각이다. 더욱이 많건 적건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 혜택을 받았다. 물론 부실 금융기관의 수많은 예금자들이 직접적인 수혜자였지만, 다른 사람들도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금융시장 안정과 외환위기 조기 극복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덕을 봤다. 실적배당 상품처럼 공적자금 투입 과정이 비(非)정상적이었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최근 정부의 공적자금 상환대책 발표를 계기로 정치권이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엄중한 책임을 묻는 절차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정조사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으며, 국민들이 받아보게 될 ‘청구서’ 금액은 그대로일 것이다. 그래도 국회의사당에 관료들을 불러모아 놓고 한바탕 질책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다지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문제는 공적자금 손실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부담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지난 18일 금융연구원과 조세연구원 주최로 열린 공청회는 그것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과제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공적자금 손실액을 현 세대가 모두 부담한다는 원칙하에 정부안처럼 상환기간을 25년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단축할지, 또는 미래세대도 부담하도록 기간을 연장할지에 대해서조차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각각이다. 금융기관과 재정의 구체적인 부담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훨씬 더 복잡미묘하고 난해한 문제다. 모범답안은 없지만 이 문제는 앞으로 수십년간 국민들의 생활과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공적자금에 대해 막연한 분노나 정략이 아닌 이성적인 접근이 절실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金基天/논설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2. 7. 23 경제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