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듯, 한국은 일부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중앙집권주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의 수준도 매우 낮다. 왜 우리는 중앙집권주의 대신에 분권과 자치를 요구하는가? 국가권력이 자리잡고 있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비 수도권 지역간의 격차가 날로 증가하여, 국토의 균형발전 혹은 지역간 균형발전이라는 목표가 더욱 실현불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에 고유한 시민의 정치적 권리가 제대로 발휘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이 정치권력이 경제논리를 압도하거나 혹은 양자가 밀접히 유착된 국가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도권 중심의 기형적 발전은 불가피한 결과이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은 국가권력의 지역적 분권 및 분산을 통하여 지역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지역자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최근에 이르러, 분권과 자치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강력하고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시도지사협의회의 결성, 지식인들에 의한 서명운동, 지역간 시민사회 연대운 동이 등장하였다. 앞으로 시민들이 각자의 힘을 결집하여 지속적으로 투쟁한다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분권과 자치의 필요불가결성에 대하여 보다 철저한 인식을 갖출 시점이다. 왜냐하면 분권과 자치에 내재된 심오한 철학적 의미와 역사적으로 형성된 정치적 함의를 제대로 파악할 때만이 우리의 투쟁은 올바른 목표설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지역/지방이란 국가/중앙과의 권력관계를 기초로 성립한다. 그러므로
분권과 자치는 기본적으로 권력관계를 의미한다. 분권이란 누가 (혹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권력을 소유하느냐의 문제이며, 자치는 소유된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는가의 문제로 규정해 볼 수 있다.
권력이란 본질적으로 지배의 메카니즘을 동반하기 때문에 권력관계의 약자인 대다수의 피지배세력은 종속적 상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분권과 자치는 이와 같은 예속적 혹은 굴종적 상황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존재론적 전환을 의미한다. 자식의 부모로부터 해방, 학생의 선생으로부터 해방, 혹은 여성의 남성으로부터 해방처럼 지역의 중앙정부 혹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로부터 해방도 인류 역사의 소위 말하는 진보적 과정, 즉 민주주의의 확산과 심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구체적 현실에서 분권이란 중앙정부의 권력을 개별 지방정부들이 얼마나 양도받는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자치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간섭이나 개입 없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권력행사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중앙정부의 철저한 분권정책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지방자치란 성립할 수 없다. 한국에서의 지방자치란 한마디로 껍데기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한국의 지방자치는 빈사상태에 있을까? 한국의 국가주의와 중앙집권주의는 그 역사가 유구한 만큼이나 뿌리가 깊고 넓게 퍼져 있으며, 또한 단단하다. 서구적 의미의 봉건적 전통이 없고, 소위 말하는 동양적 전제주의의 정치풍토에서 형성된 불행한 정치적 유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아가, 분단으로 인하여 아직도 국가건설(Nation State Building)이라는 역사적 과제가 미완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강력한 통일국가에 대한 환상과 염원이 여전히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이제 분권과 자치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미룰 수 없는 절박하고도 시급한 정치적 과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성숙만이 우리의 살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는 이제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러뜨릴 태세이다. 민주주의의 실질화만이 한국사회를 바르게 인도하는 수단이자 목표이다.
민주주의의 관건은 권력의 분산에 있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은 권력의 기능적 분산이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구분은 권력의 영역별 분산이다. 이 두 가지 권력의 분산을 더욱 철저하고도 효율적으로 촉진시키는 것이 바로 권력의 지역적 분산인 분권과 자치이다. 지역적 분권과 자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형식적 차원에서만 영위될 뿐, 실질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한국 민주주의를 제대로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분권과 자치가 필수적이다. 이 점에 있어서, 통일도 민주주의라는 궁극적 목표에 결코 우선할 수 없다.
그러나 분권과 자치는 비록 매우 밀접한 상호 유기적 관련성을 갖는 개념이지만 역시 분권은 자치를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이 점은 매우 미묘한 이론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어느 정도의 혹은 얼마만큼의 분권이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각자의 이론적-이념적 입장에 따라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론"(多多益善論), 최소한의 자치면 족하다는 "최소주의론"(最少主義論), 혹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상호 견제를 추구하는 "최적균형론"(最適均衡論) 등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최소국가론을 주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다익선론을 선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국가체제를 연방주의(聯邦主義)체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합중국(United States of Korea)이야말로 현재의 지연주의적 정치구도를 자연스럽게 수렴하면서도 지역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최선의 민주적 정치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폭력과 (정당화된 폭력으로서) 권력의 독점체인 국가체제는 가능한 수준까지 분산될 경우에만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효율성은 단기적으로는 다소 감소되겠지만). 강력한 국가는 강력한 질서를 보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은 엄청나게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최소국가론은 보다 적극적인 측면에서는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정치적 기반을 용이하게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 국가주의와 세계주의가 거대한 역사적 물결로서 엄습하는 이 문명사적 전환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정치적 단위는 역시 국가의 원초적 출생처였던 지역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우리는 자치의 의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지역자치는 통상적으로 혹은 행정학적 의미로 사용되는 지방자치의 개념을 훨씬 넘어서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자치가 단순히 시장이나 도지사, 군수, 구청장의 독자적 권한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수준에서만 이해된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지방토호의 폐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심하였다. 중앙정부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 것도 이들을 감시하고 징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자치의 진정한 의미는 주민의 실질적 정치참여를 보장한다는 직접민주주의 목표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앙정부의 황제적 대통령에 버금가는 황제적 시장, 독재적 구청장, 권위적 군수가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역자치의 감시인이자, 주민참여의 일환으로 각종 지역 시민/주민운동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항상 시민의 입장에서, 감시와 견제, 비판과 투쟁이라는 공세적 전략과 선별적-조건적-일시적 협조라는 유화적 전략을 적절히 병행하며 추구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지역자치는 결코 기존 정치적 관행의 지역적 재생산으로 귀결되어서 안 된다.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하는 전기가 되어야 한다. 권력게임에 몰두하는 중앙정치와는 달리 민생과 직결되고 시민에 의해 직접 통제되는 생활정치가 지역자치의 핵심적 내용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지역자치 시대의 정치인은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어떠한 의미에서도 특권층이 되어서 안 된다. 그들을 더 이상 우매한 대중을 계몽하고 선도하는 대표자로 선출해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의 전개와 함께 시민의 역량과 자질도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주민의 뜻을 전달하는 대리인으로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과거의 형식적 대의민주제는 과감히 개혁되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 정치인은 고도의 전문능력을 갖춘 고용인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들의 임기는 철저히 제한할 필요가 있고, 무자비할 정도의 가혹한 공직자윤리를 적용하여 직위를 이용한 어떠한 부정부패도 저지를 수 없도록 해야한다.
이처럼 지역자치란 단순한 중앙권력의 지역분산, 즉, 분권의 결과가 아니라 기존의 권력정치를 청산하여 민생정치를 확립하는 전기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지역자치의 꿈을 실현하자면 그 길은 요원하고도 험난할 것이다. 특히, 권력은 우리 모두가 소리 높여 거칠게 외치고 항의하지 않으면 절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권력의 양보를 받아내자면 중앙정부에 대하여 끈질기고도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야만 한다. 어떤 면에서는 중앙정부의 구성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역 국회의원들을 정치적으로 거세게 압박해야 할 것이다. 소 국회의원의 행세를 하고 싶은 지방의원들에게도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 시민운동단체와 활동가들도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분권과 자치는 부산이나 대구 혹은 광주나 목포 등의 지방도시만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서울이나 수도권도 지역적 정체성과 품위를 가지자면 반드시 필요한 목표이다. 우리 한국사회 전체가 골고루 자유롭게 잘 살 수 있는 길이다. 통일이 되기 전에 남북한 모두 명실상부한 지역자치를 이룩해야 한다.
끝으로, 분권과 자치가 반드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지역간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될 수도 있다. 지역간 갈등도 더욱 잦아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간 격차나 지역이기주의가 적어도 오늘날처럼 국론을 분열시키는 중앙집권적 지연주의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영호남 격차의 총량적 의미 뒤에 숨은 영남 내부 혹은 호남 내부의 격차가 어떤지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 아닐까? 지역이기주의 또한 개별 인간의 이기심처럼 너무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것을 중앙이 자의적으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조정하려 들 때 더 큰 불만과 상처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분권과 자치는 우리들에게 분명히 자유와 자율성의 공간을 더 넓혀 줄 것이다. 그 공간을 어떻게 메꿀지는 모든 자유인의 책임이다. 다만, 그 결과가 불투명하다는데 자유의 딜렘마가 있다. 그렇지만 분권과 자치의 길은 회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우리 앞에 있다.
분권과 자치
주지하듯, 한국은 일부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중앙집권주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의 수준도 매우 낮다. 왜 우리는 중앙집권주의 대신에 분권과 자치를 요구하는가? 국가권력이 자리잡고 있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비 수도권 지역간의 격차가 날로 증가하여, 국토의 균형발전 혹은 지역간 균형발전이라는 목표가 더욱 실현불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에 고유한 시민의 정치적 권리가 제대로 발휘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이 정치권력이 경제논리를 압도하거나 혹은 양자가 밀접히 유착된 국가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도권 중심의 기형적 발전은 불가피한 결과이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은 국가권력의 지역적 분권 및 분산을 통하여 지역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지역자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최근에 이르러, 분권과 자치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강력하고도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시도지사협의회의 결성, 지식인들에 의한 서명운동, 지역간 시민사회 연대운 동이 등장하였다. 앞으로 시민들이 각자의 힘을 결집하여 지속적으로 투쟁한다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분권과 자치의 필요불가결성에 대하여 보다 철저한 인식을 갖출 시점이다. 왜냐하면 분권과 자치에 내재된 심오한 철학적 의미와 역사적으로 형성된 정치적 함의를 제대로 파악할 때만이 우리의 투쟁은 올바른 목표설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지역/지방이란 국가/중앙과의 권력관계를 기초로 성립한다. 그러므로 분권과 자치는 기본적으로 권력관계를 의미한다. 분권이란 누가 (혹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권력을 소유하느냐의 문제이며, 자치는 소유된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는가의 문제로 규정해 볼 수 있다.
권력이란 본질적으로 지배의 메카니즘을 동반하기 때문에 권력관계의 약자인 대다수의 피지배세력은 종속적 상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분권과 자치는 이와 같은 예속적 혹은 굴종적 상황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존재론적 전환을 의미한다. 자식의 부모로부터 해방, 학생의 선생으로부터 해방, 혹은 여성의 남성으로부터 해방처럼 지역의 중앙정부 혹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로부터 해방도 인류 역사의 소위 말하는 진보적 과정, 즉 민주주의의 확산과 심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구체적 현실에서 분권이란 중앙정부의 권력을 개별 지방정부들이 얼마나 양도받는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자치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간섭이나 개입 없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권력행사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중앙정부의 철저한 분권정책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지방자치란 성립할 수 없다. 한국에서의 지방자치란 한마디로 껍데기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한국의 지방자치는 빈사상태에 있을까? 한국의 국가주의와 중앙집권주의는 그 역사가 유구한 만큼이나 뿌리가 깊고 넓게 퍼져 있으며, 또한 단단하다. 서구적 의미의 봉건적 전통이 없고, 소위 말하는 동양적 전제주의의 정치풍토에서 형성된 불행한 정치적 유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아가, 분단으로 인하여 아직도 국가건설(Nation State Building)이라는 역사적 과제가 미완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강력한 통일국가에 대한 환상과 염원이 여전히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이제 분권과 자치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미룰 수 없는 절박하고도 시급한 정치적 과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성숙만이 우리의 살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는 이제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러뜨릴 태세이다. 민주주의의 실질화만이 한국사회를 바르게 인도하는 수단이자 목표이다.
민주주의의 관건은 권력의 분산에 있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은 권력의 기능적 분산이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구분은 권력의 영역별 분산이다. 이 두 가지 권력의 분산을 더욱 철저하고도 효율적으로 촉진시키는 것이 바로 권력의 지역적 분산인 분권과 자치이다. 지역적 분권과 자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형식적 차원에서만 영위될 뿐, 실질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한국 민주주의를 제대로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분권과 자치가 필수적이다. 이 점에 있어서, 통일도 민주주의라는 궁극적 목표에 결코 우선할 수 없다.
그러나 분권과 자치는 비록 매우 밀접한 상호 유기적 관련성을 갖는 개념이지만 역시 분권은 자치를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이 점은 매우 미묘한 이론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어느 정도의 혹은 얼마만큼의 분권이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각자의 이론적-이념적 입장에 따라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론"(多多益善論), 최소한의 자치면 족하다는 "최소주의론"(最少主義論), 혹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상호 견제를 추구하는 "최적균형론"(最適均衡論) 등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최소국가론을 주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다익선론을 선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국가체제를 연방주의(聯邦主義)체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합중국(United States of Korea)이야말로 현재의 지연주의적 정치구도를 자연스럽게 수렴하면서도 지역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최선의 민주적 정치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폭력과 (정당화된 폭력으로서) 권력의 독점체인 국가체제는 가능한 수준까지 분산될 경우에만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효율성은 단기적으로는 다소 감소되겠지만). 강력한 국가는 강력한 질서를 보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은 엄청나게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최소국가론은 보다 적극적인 측면에서는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정치적 기반을 용이하게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 국가주의와 세계주의가 거대한 역사적 물결로서 엄습하는 이 문명사적 전환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정치적 단위는 역시 국가의 원초적 출생처였던 지역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우리는 자치의 의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지역자치는 통상적으로 혹은 행정학적 의미로 사용되는 지방자치의 개념을 훨씬 넘어서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자치가 단순히 시장이나 도지사, 군수, 구청장의 독자적 권한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수준에서만 이해된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지방토호의 폐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심하였다. 중앙정부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 것도 이들을 감시하고 징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자치의 진정한 의미는 주민의 실질적 정치참여를 보장한다는 직접민주주의 목표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앙정부의 황제적 대통령에 버금가는 황제적 시장, 독재적 구청장, 권위적 군수가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역자치의 감시인이자, 주민참여의 일환으로 각종 지역 시민/주민운동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항상 시민의 입장에서, 감시와 견제, 비판과 투쟁이라는 공세적 전략과 선별적-조건적-일시적 협조라는 유화적 전략을 적절히 병행하며 추구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지역자치는 결코 기존 정치적 관행의 지역적 재생산으로 귀결되어서 안 된다.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하는 전기가 되어야 한다. 권력게임에 몰두하는 중앙정치와는 달리 민생과 직결되고 시민에 의해 직접 통제되는 생활정치가 지역자치의 핵심적 내용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지역자치 시대의 정치인은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어떠한 의미에서도 특권층이 되어서 안 된다. 그들을 더 이상 우매한 대중을 계몽하고 선도하는 대표자로 선출해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의 전개와 함께 시민의 역량과 자질도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주민의 뜻을 전달하는 대리인으로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과거의 형식적 대의민주제는 과감히 개혁되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 정치인은 고도의 전문능력을 갖춘 고용인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들의 임기는 철저히 제한할 필요가 있고, 무자비할 정도의 가혹한 공직자윤리를 적용하여 직위를 이용한 어떠한 부정부패도 저지를 수 없도록 해야한다.
이처럼 지역자치란 단순한 중앙권력의 지역분산, 즉, 분권의 결과가 아니라 기존의 권력정치를 청산하여 민생정치를 확립하는 전기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지역자치의 꿈을 실현하자면 그 길은 요원하고도 험난할 것이다. 특히, 권력은 우리 모두가 소리 높여 거칠게 외치고 항의하지 않으면 절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권력의 양보를 받아내자면 중앙정부에 대하여 끈질기고도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야만 한다. 어떤 면에서는 중앙정부의 구성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역 국회의원들을 정치적으로 거세게 압박해야 할 것이다. 소 국회의원의 행세를 하고 싶은 지방의원들에게도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 시민운동단체와 활동가들도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분권과 자치는 부산이나 대구 혹은 광주나 목포 등의 지방도시만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서울이나 수도권도 지역적 정체성과 품위를 가지자면 반드시 필요한 목표이다. 우리 한국사회 전체가 골고루 자유롭게 잘 살 수 있는 길이다. 통일이 되기 전에 남북한 모두 명실상부한 지역자치를 이룩해야 한다.
끝으로, 분권과 자치가 반드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지역간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될 수도 있다. 지역간 갈등도 더욱 잦아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간 격차나 지역이기주의가 적어도 오늘날처럼 국론을 분열시키는 중앙집권적 지연주의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영호남 격차의 총량적 의미 뒤에 숨은 영남 내부 혹은 호남 내부의 격차가 어떤지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 아닐까? 지역이기주의 또한 개별 인간의 이기심처럼 너무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것을 중앙이 자의적으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조정하려 들 때 더 큰 불만과 상처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분권과 자치는 우리들에게 분명히 자유와 자율성의 공간을 더 넓혀 줄 것이다. 그 공간을 어떻게 메꿀지는 모든 자유인의 책임이다. 다만, 그 결과가 불투명하다는데 자유의 딜렘마가 있다. 그렇지만 분권과 자치의 길은 회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우리 앞에 있다.
김성국(비전@한국 지방자치정책위원, 부산대 교수/사회학)
출처 - 비전@한국홈페이지 회원칼럼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