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은 여러 가지다. 흔히 경제적 안정과 함께 정치적으로는 주로 3권 분립이나 의회정치 혹은 다수결의 원칙과 기본권 보장 등이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얘기되어 왔다. 이것은 정치과정에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의 구비 여부와 다수 국민들의 참정권 행사 여부가 민주화 논의의 주 대상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동안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면에서 주로 수(數)와 참여의 가치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와 관련된 이 같은 그간의 논의들은 다른 한편으로 민주정치를 하고자 하는 정치엘리트의 자질이나 능력, 그리고 국가구성원으로서 일반 국민들의 품성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중시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아마도 민주주의가 원래 엘리트와 대중을 포함한 국가구성원들이 모두 도덕적, 이성적 능력을 구비하고 있을 것으로 전제했거나,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현대정치학이 사람보다는 주로 구조나 제도에, 그리고 정치체계상 투입기능(input function) 쪽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입"해서 잘 정착시키고자 했다면, 우리는 "덕성이 있는 국민은 부패한 국회의원을 뽑지 않고, 비열하고 사려 없는 국민은 선량한 정부를 가질 수 없다"는 버크(Edmond Burke)의 충고, 그리고 오로지 "참여만이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특징이 아니다" 라는 정치엘리트 이론가 페리(Geraint Perry) 교수의 견해를 더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고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살고 있는 엘리트와 대중들이 투표만 열심히 해서는 안되고,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 누릴 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냉정한 사실을 우리는 아주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했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주적인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따라서 민주화과정에서는 반 독재투쟁 뿐 아니라 민주적인 엘리트와 국민을 "만들어내는 작업"도 용의주도하게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근대 시민혁명 이후 민주주의 시대가 되면서, 선거와 투표제도가 일반화되고 평등가치의 중요성이 점차 깊게 인식됨에 따라, 지도자나 엘리트의 질적 차원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의사나 변호사, 교원이나 전문경영자 등과 같은 영역에서는 자격시험이나 합당한 자질 검증과 같은 제도가 크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실무행정직에 종사할 공무원들도 엄격한 시험을 거쳐 선발 또는 임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대통령이나 수상, 장관이나 국회의원, 혹은 정당지도자 등과 같은 정치지도자들의 자질과 자격을 검증하는 제도는 아예 없다.
프로이센의 수상이었고 후에는 독일제국의 수상이었던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k)는 일찍이 이러한 현실을 꼬집으며, "우리는 다른 공무원들에게는 빠짐없이 일반시험, 사전 실무교육, 어려운 국가시험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치가는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면 누구나 될 수 있는 형편"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당시 독일의 정치적 형편이 "자격도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서 누구나 제국 수상이 될 수 있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베버(Max Weber)도 비스마르크가 비운 수상 자리에 앉아 태연자약하게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자질에 대해 일반국민들이 전혀 무비판적이라고 통탄하면서, "지도적인 정치인들에게 전문자격 요건이 전혀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민주주의가 성숙되어 있다는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엘리트에 대한 자격요건이 의미 있게 규범화되어 있는 나라도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은 각종 이익단체들과 검은 커넥션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국가이익" 혹은 "국리민복"을 위해 일한다는 인식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들키지 않게 불법, 탈법행위를 일삼고, 비리에 적당히 몸을 대는 것이 정치인들의 '현명한 처세'로 일상화된지도 오래다. 그렇지 않으면 '왕따' 당하고 '출세'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나타났는가? 적어도 다음 2가지의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민주정치제도의 합리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낙관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근대민주사회는 이른 바 "법적-제도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정치적 권위체에 의해 다스려지는 사회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그러한 제도나 법의 구비가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고, 따라서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어떠한 의미에서든 권력의 인격화는 무조건 부정적인 함의를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고, 그러한 법과 제도의 운용으로서의 민주적인 정치과정은 일종의 "자연도태"(natural selection)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이 과정을 거쳐 선발된 공직자는 일단 믿을 만하다는 일반적인 신념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후발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물론 민주주의 선진국가에서도 법과 제도의 투명한 운용이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법은 비리에 익숙한 파워엘리트의 탈출구가 되었고, 제도적 과정은 각종 특수이익들이 경합하는 '자유시장'이 되었다.
둘째, 오늘날 정치를 '권력투쟁'으로 단순화시키는 현실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이어서 정치 혹은 권력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목적에 대한 의식이 박약해졌고, 그 결과 정치인의 능력과 품성 등에 대한 사려 깊은 고려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정치는 물론 권력을 둘러싼 갈등과정이지만, 동시에 공동체가 지닌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는 리더십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지적 흐름은 권력의 쟁취와 관련된 권력자원의 문제, 엘리트의 사회경제적 배경, 그리고 권력투쟁 과정의 합법성 문제 등에만 지대한 관심을 두었다. 반면에 권력을 통해 공동체의 각종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권력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권력의 효용'(utility of power)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명제에 대한 인식은 희박했다.
적어도 이상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한 정치인들의 자질과 능력에 대해서는 정당한 관심이 주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그 자질과 능력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부족했으며, 그들의 어떠한 특성이 어떠한 상황에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이해도 빈약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근대화과정은 특히 그러한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에 성공적이지 못했다. 경제건설과 민주적인 정치제도의 도입에는 성공했으나, 민주주의에 합당한 덕성을 갖춘 엘리트와 시민들을 육성하는 정책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일반국민들은 여전히 정치인들의 비행과 악행에 크게 좌절하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으로 호된 연단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자질과 능력이 있는 엘리트와 리더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 정치인의 자질문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은 여러 가지다. 흔히 경제적 안정과 함께 정치적으로는 주로 3권 분립이나 의회정치 혹은 다수결의 원칙과 기본권 보장 등이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얘기되어 왔다. 이것은 정치과정에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의 구비 여부와 다수 국민들의 참정권 행사 여부가 민주화 논의의 주 대상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동안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면에서 주로 수(數)와 참여의 가치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와 관련된 이 같은 그간의 논의들은 다른 한편으로 민주정치를 하고자 하는 정치엘리트의 자질이나 능력, 그리고 국가구성원으로서 일반 국민들의 품성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중시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아마도 민주주의가 원래 엘리트와 대중을 포함한 국가구성원들이 모두 도덕적, 이성적 능력을 구비하고 있을 것으로 전제했거나,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현대정치학이 사람보다는 주로 구조나 제도에, 그리고 정치체계상 투입기능(input function) 쪽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수입"해서 잘 정착시키고자 했다면, 우리는 "덕성이 있는 국민은 부패한 국회의원을 뽑지 않고, 비열하고 사려 없는 국민은 선량한 정부를 가질 수 없다"는 버크(Edmond Burke)의 충고, 그리고 오로지 "참여만이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특징이 아니다" 라는 정치엘리트 이론가 페리(Geraint Perry) 교수의 견해를 더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고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살고 있는 엘리트와 대중들이 투표만 열심히 해서는 안되고,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 누릴 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냉정한 사실을 우리는 아주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했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주적인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따라서 민주화과정에서는 반 독재투쟁 뿐 아니라 민주적인 엘리트와 국민을 "만들어내는 작업"도 용의주도하게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근대 시민혁명 이후 민주주의 시대가 되면서, 선거와 투표제도가 일반화되고 평등가치의 중요성이 점차 깊게 인식됨에 따라, 지도자나 엘리트의 질적 차원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의사나 변호사, 교원이나 전문경영자 등과 같은 영역에서는 자격시험이나 합당한 자질 검증과 같은 제도가 크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실무행정직에 종사할 공무원들도 엄격한 시험을 거쳐 선발 또는 임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대통령이나 수상, 장관이나 국회의원, 혹은 정당지도자 등과 같은 정치지도자들의 자질과 자격을 검증하는 제도는 아예 없다.
프로이센의 수상이었고 후에는 독일제국의 수상이었던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k)는 일찍이 이러한 현실을 꼬집으며, "우리는 다른 공무원들에게는 빠짐없이 일반시험, 사전 실무교육, 어려운 국가시험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치가는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면 누구나 될 수 있는 형편"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당시 독일의 정치적 형편이 "자격도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서 누구나 제국 수상이 될 수 있는 상태"라고 비판했다. 베버(Max Weber)도 비스마르크가 비운 수상 자리에 앉아 태연자약하게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자질에 대해 일반국민들이 전혀 무비판적이라고 통탄하면서, "지도적인 정치인들에게 전문자격 요건이 전혀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민주주의가 성숙되어 있다는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엘리트에 대한 자격요건이 의미 있게 규범화되어 있는 나라도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은 각종 이익단체들과 검은 커넥션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국가이익" 혹은 "국리민복"을 위해 일한다는 인식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들키지 않게 불법, 탈법행위를 일삼고, 비리에 적당히 몸을 대는 것이 정치인들의 '현명한 처세'로 일상화된지도 오래다. 그렇지 않으면 '왕따' 당하고 '출세'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나타났는가? 적어도 다음 2가지의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민주정치제도의 합리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낙관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근대민주사회는 이른 바 "법적-제도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정치적 권위체에 의해 다스려지는 사회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그러한 제도나 법의 구비가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고, 따라서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어떠한 의미에서든 권력의 인격화는 무조건 부정적인 함의를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고, 그러한 법과 제도의 운용으로서의 민주적인 정치과정은 일종의 "자연도태"(natural selection)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이 과정을 거쳐 선발된 공직자는 일단 믿을 만하다는 일반적인 신념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후발 민주주의국가에서는 물론 민주주의 선진국가에서도 법과 제도의 투명한 운용이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법은 비리에 익숙한 파워엘리트의 탈출구가 되었고, 제도적 과정은 각종 특수이익들이 경합하는 '자유시장'이 되었다.
둘째, 오늘날 정치를 '권력투쟁'으로 단순화시키는 현실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이어서 정치 혹은 권력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목적에 대한 의식이 박약해졌고, 그 결과 정치인의 능력과 품성 등에 대한 사려 깊은 고려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정치는 물론 권력을 둘러싼 갈등과정이지만, 동시에 공동체가 지닌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는 리더십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지적 흐름은 권력의 쟁취와 관련된 권력자원의 문제, 엘리트의 사회경제적 배경, 그리고 권력투쟁 과정의 합법성 문제 등에만 지대한 관심을 두었다. 반면에 권력을 통해 공동체의 각종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권력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권력의 효용'(utility of power)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명제에 대한 인식은 희박했다.
적어도 이상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한 정치인들의 자질과 능력에 대해서는 정당한 관심이 주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그 자질과 능력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부족했으며, 그들의 어떠한 특성이 어떠한 상황에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이해도 빈약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근대화과정은 특히 그러한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에 성공적이지 못했다. 경제건설과 민주적인 정치제도의 도입에는 성공했으나, 민주주의에 합당한 덕성을 갖춘 엘리트와 시민들을 육성하는 정책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일반국민들은 여전히 정치인들의 비행과 악행에 크게 좌절하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으로 호된 연단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자질과 능력이 있는 엘리트와 리더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정윤재(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출처 - 비전@한국홈페이지 회원칼럼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