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사토론 제역할 못한다 | |
2002-07-13 | |
TV 시사토론 제역할 못한다 정부 눈치보고 민감한 이슈는 아예 기피 패널도 교수 위주… 다양한 시각 못 담아 ▶ ‘정백토’로 불리면서 인기를 끌었던 MBC 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 정운영씨는 2000년 7월 자리를 떠났다. 이는 우리 방송사 토론 프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한 사건이었다. TV 방송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이 죽어가고 있다. 여론 형성을 위한 토론의 장이 활성화하지 않고서야 제대로된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김대중 정부 초기만 해도 KBS.MBC.SBS.EBS 등 각 지상파 방송들은 사별로 서너개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편성했었다. 그러나 2000년 들어 대부분 폐지하고 각각 한개만 방송하고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마저 점차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의 경우 공중파 방송 3사가 일주일에 편성하는 시사토론 프로그램은 15개가 넘는다. 상업방송 중심인 미국에서도 공중파 방송들은 일주일에 3개 이상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 공중파 방송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연세대 최양수 교수는 "지역.이데올로기.세대간의 갈등과 반목이 심화하면서 방송사가 민감한 이슈를 기피한 결과"라면서 "방송사 경영진이 정치권이나 정부와의 관계를 먼저 고려하는 한 문제는 해결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방송진흥원 하윤금 박사의 지적은 더 구체적이다. 그는 토론문화가 발전한 프랑스와 한국의 TV 시사토론 프로그램 비교연구를 통해 "한국은 주로 정치에 치우쳐 있지만 프랑스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토론 운영방식의 경우 한국은 폐쇄적인 구조인 반면 프랑스는 개방형인 데다 토론 도중 돌출발언도 허용하는 등 긴장감과 흥미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경우 연방커뮤니케이션위원회(FCC)는 '공정보도 원칙(Fairness doctrine)'을 도입해 TV들이 다양한 이슈들을 공정하게 다루도록 의무화했다.이는 1970년대 상업방송들이 낙태.총기소유 등 사회적 쟁점들을 다루는 것을 회피한 데 따른 것이다.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도 프로그램 성공 여부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지금까지 KBS '생방송 심야토론'의 사회자 8명 가운데 5명이 정계로 진출, 이런저런 문제점을 남겼다. 그런가 하면 외압에 의해 사회자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당시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가운데 그만둔 'MBC 100분 토론' 진행자였던 중앙일보 정운영 논설위원이 대표적 사례다.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서는 패널 및 이슈 선정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사회자들은 신문기자 출신이 많고, 토론 패널의 경우도 대부분 신문기자들이다. 이들은 고정적으로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통찰력 있게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국 ABC방송은 뉴욕 타임스와, NBC는 워싱턴 포스트와 협정을 체결해 기자들이 방송 뉴스와 시사토론 프로그램 '20/20', 아침 뉴스 쇼인 '굿모닝 아메리카'에 패널로 참여하고 있고 시청자들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국은 대부분 교수와 정치인이 패널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한양대 강남준 교수는 "KBS.MBC.EBS 등 공영방송사가 존재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편성하면서 의미있는 진행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하고 "이런 바람에 방송사들이 역행하고 있으니 민영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양수 교수의 다음 지적에 방송 경영진은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정권 말기에 국가의 미래를 포함한 다양한 이슈와 쟁점을 여러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높이고,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 제시에 기여할 수 있다." 김택환 전문기자 twkim@joongang.co.kr 출처 - 중앙일보 2002. 7.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