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여론 조사를 보면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미국의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도 미국보다 중국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親美聯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들어 자주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한국인의 인식변화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외교적 선택은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 親美聯中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미국과 사활적 안보동맹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에서 엄청난 인적,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면서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아준 것이 바로 미국이었다. 그 후에도 미국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경제발전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불행한 일들도 없지 않았고, 이를 통해 한국인의 대미관이 애증이 교차하는 이중적 성격을 띄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서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의 단계로 접어들자,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미국은 더 이상 필요 불가결한 안보 파트너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인식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분단을 타파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과정에서는 협력자가 아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일부에서나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중국과는 포괄적 동반자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포괄적 동반자관계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경제분야에서의 협력차원을 넘어 군사와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 협력관계를 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1992년 한중수교 이래 양국간에는 경제협력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작년의 경우 양국 간 교역이 340억 달러에 달했고, 1999년부터는 양국 관계가 경제협력 차원을 넘어 군사분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양국의 국방장관이 상호 방문했고, 낮은 단계이지만 정보교류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시도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중국은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고, 우리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미관계가 지속되고 한중관계도 건강해질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동반자를 伴關係라 표현하며, 그 뜻을 互不爲敵 同當風險이라 풀이한다.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운명을 같이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의 동맹국은 어디까지나 북한이지 한국은 아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며 미국의 대중 견제망의 한 축에 불과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남북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중국이 어느 쪽을 지원할 것인가는 분명하다. 적어도 우리를 지지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미.중간에 분쟁이 터질 경우 한국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할 것이라 게 중국의 시각이다. 적어도 미국에 반대해서 중국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국이 바라는 최상의 상황은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중국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21세기 우리 외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바람직한 상황이라는 점에는 재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소련이 지구상에서 이미 사라졌고 그 뒤를 이은 러시아가 쇠퇴를 거듭하는 마당에, 21세기 국제정치경제의 골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미.중관계라는 점은 이미 진부한 주장이 되어버렸다. 특히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과 중국은 남북한을 제외하면 가장 직접적인 이해당사국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도 지난날의 유럽 중심에서 그 무게 중심을 아시아로 옮겨가고 있다.
물론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중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이 세계무대의 유일한 패권국가로 남아있는 가운데 중국은 이러한 미국 중심 현상이 오래 계속되는 것을 불안해하고 있으며,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을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도전국가로 지목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미.중간에 존재하는 갈등요인들이 수면 밑에 잠복해 있으나, 언제 이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여 양국간의 관계가 충돌의 위기를 맞게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미.중간의 갈등이 첨예화할 수 있는 지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에서는 바로 대만과 한반도를 꼽고 있다. 그러나 대만과 한반도의 경우는 갈등의 성격에 있어 차이점이 존재한다. 대만의 경우가 가치관의 차이라면, 한반도의 경우는 전략적 이익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대만의 경우 미국은 이미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대만을 흡수통합하기 위해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중국이 무력사용을 자제하는 한 미.중간의 갈등요인은 수면 밑에 잠복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가치관의 차이로 설명하는 이유는 대만과 중국은 각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상이한 가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대만문제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가치관의 충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국에게 대만문제는 궁극적으로 미국적 가치관을 포기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에 비해 한반도에서는 일단 남북이 서로 상이한 체제와 가치관을 보전하면서 평화공존의 추구를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타협과 협력의 여지가 많이 있다. 한반도가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의 배타적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전략적 이해관계가 한반도 문제의 핵심이다. 그래서 대만과는 달리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히려 높다고 볼 수 있다. 가치관의 경우 타협이 불가능하지만 전략적 이해관계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간에 협력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親美聯中정책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는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미.중관계를 흑백의 논리로 단순화함으로서 스스로의 선택을 제약하거나 그런 선택을 강요당하는 객관적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외교적 기지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갖는 전략적 이익을 엄밀히 분석하고, 거기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찾는 동시에 그 공통점의 공간을 넓혀나가는 작업이 21세기 한국 외교의 도전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와 미.중관계 - 親美聯中의 가능성
최근의 여론 조사를 보면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미국의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도 미국보다 중국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親美聯中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들어 자주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한국인의 인식변화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외교적 선택은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 親美聯中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우리는 미국과 사활적 안보동맹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에서 엄청난 인적,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면서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아준 것이 바로 미국이었다. 그 후에도 미국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경제발전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불행한 일들도 없지 않았고, 이를 통해 한국인의 대미관이 애증이 교차하는 이중적 성격을 띄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서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의 단계로 접어들자,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미국은 더 이상 필요 불가결한 안보 파트너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인식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분단을 타파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과정에서는 협력자가 아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일부에서나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중국과는 포괄적 동반자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포괄적 동반자관계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경제분야에서의 협력차원을 넘어 군사와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 협력관계를 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1992년 한중수교 이래 양국간에는 경제협력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작년의 경우 양국 간 교역이 340억 달러에 달했고, 1999년부터는 양국 관계가 경제협력 차원을 넘어 군사분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양국의 국방장관이 상호 방문했고, 낮은 단계이지만 정보교류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시도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중국은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고, 우리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미관계가 지속되고 한중관계도 건강해질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동반자를 伴關係라 표현하며, 그 뜻을 互不爲敵 同當風險이라 풀이한다.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운명을 같이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의 동맹국은 어디까지나 북한이지 한국은 아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며 미국의 대중 견제망의 한 축에 불과하다. 극단적으로 말해 남북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중국이 어느 쪽을 지원할 것인가는 분명하다. 적어도 우리를 지지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미.중간에 분쟁이 터질 경우 한국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할 것이라 게 중국의 시각이다. 적어도 미국에 반대해서 중국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국이 바라는 최상의 상황은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중국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21세기 우리 외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바람직한 상황이라는 점에는 재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소련이 지구상에서 이미 사라졌고 그 뒤를 이은 러시아가 쇠퇴를 거듭하는 마당에, 21세기 국제정치경제의 골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미.중관계라는 점은 이미 진부한 주장이 되어버렸다. 특히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과 중국은 남북한을 제외하면 가장 직접적인 이해당사국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도 지난날의 유럽 중심에서 그 무게 중심을 아시아로 옮겨가고 있다.
물론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중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이 세계무대의 유일한 패권국가로 남아있는 가운데 중국은 이러한 미국 중심 현상이 오래 계속되는 것을 불안해하고 있으며,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을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도전국가로 지목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미.중간에 존재하는 갈등요인들이 수면 밑에 잠복해 있으나, 언제 이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여 양국간의 관계가 충돌의 위기를 맞게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미.중간의 갈등이 첨예화할 수 있는 지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에서는 바로 대만과 한반도를 꼽고 있다. 그러나 대만과 한반도의 경우는 갈등의 성격에 있어 차이점이 존재한다. 대만의 경우가 가치관의 차이라면, 한반도의 경우는 전략적 이익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대만의 경우 미국은 이미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대만을 흡수통합하기 위해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중국이 무력사용을 자제하는 한 미.중간의 갈등요인은 수면 밑에 잠복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가치관의 차이로 설명하는 이유는 대만과 중국은 각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상이한 가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대만문제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가치관의 충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국에게 대만문제는 궁극적으로 미국적 가치관을 포기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에 비해 한반도에서는 일단 남북이 서로 상이한 체제와 가치관을 보전하면서 평화공존의 추구를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타협과 협력의 여지가 많이 있다. 한반도가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의 배타적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전략적 이해관계가 한반도 문제의 핵심이다. 그래서 대만과는 달리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히려 높다고 볼 수 있다. 가치관의 경우 타협이 불가능하지만 전략적 이해관계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간에 협력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親美聯中정책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는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미.중관계를 흑백의 논리로 단순화함으로서 스스로의 선택을 제약하거나 그런 선택을 강요당하는 객관적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외교적 기지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갖는 전략적 이익을 엄밀히 분석하고, 거기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찾는 동시에 그 공통점의 공간을 넓혀나가는 작업이 21세기 한국 외교의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정종욱(비전@한국 고문. 아주대 교수/국제정치학)
출처 - 비전@한국홈페이지 회원칼럼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