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유언비어"라는 것이 횡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시간이 지나서 보면 '흐르는 물과 뛰는 메뚜기가 전해주는' 그 말들이 족집게 점쟁이보다도 더 정확하게 사실을 꿰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그 때문인지 그 때는 이 유언비어라는 출처불명의 소문을 '날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포만 해도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유언비어는 권위주의 정권의 탓으로만 여겼다. 권위주의의 폭압 하에서 정상적인 언론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 탓에 그 틈새를 유언비어가 채우게 되었으며, 유언비어의 성격상 권위주의정권이 직접적인 통제를 하기가 어려운 만큼 사실에 근접했다고 생각했다. 유언비어는 권위주의 하에서 경색된 언로를 뚫는 소중한 역할을 맡았다. 이것은 유언비어에 관한 표준적인 사회학적 설명이기도 했다.
권위주의의 유물이라고만 생각했던 유언비어가 명색이 '문민 2기'라고 하는 '국민의 정부' 하에서도 계속 나돈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케 하는 현상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진짜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며, 유언비어는 그야말로 근거 없는 낭설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유언비어가 사실을 전하고 있으며, 외견상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속내로는 민주화가 철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우리의 희망사항은 전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현 정부 집권 후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유언비어'가 양산되고 있다. 진원지는 옷로비사건, 한빛은행 부정대출, 정현준게이트, 진승현게이트, 이용호게이트, 분당 백궁역 주변지역 용도변경의혹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각종 의혹들이다. 특히 3대 게이트는 그 동안 끈질기게 나돌던 증권시장을 통한 여권의 정치자금 조달설을 확인시켜주는 듯한 의혹들이 최근의 각종 게이트들은 등장인물들이 이리저리 얽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현 정권의 기반인 특정 지역을 고리로 한 권력형 비리 의혹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동일하다. 설익은 벤처기업가들이 권력층의 비호를 받아 일확천금을 노렸고, 일부 등장인물이 겹치고 권력과 돈이 오갔다는 점에서 "세 쌍둥이"이라고 할 만큼 닮은 꼴이다. 단적인 증거로 김영재 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이 세 사건에 다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있고, 김형윤 전 국정원 단장 역시 동방금고사건과 이용호씨 사건에 모두 관련돼 있다. 또 정현준씨의 정-관계 로비 창구로 지목되자 미국으로 도피한 오기준 전 신양팩토링 사장과 이용호씨의 로비 창구였던 여운환씨는 광주 주먹계 선-후배 사이로 알려져 있다.
야당에서는 최근에 온갖 게이트가 빈번히 터져나오는 것이 여권의 정치자금 조성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작년 총선 전 막대한 정치자금을 벤처기업과 코스닥시장을 통해 조성한 여파가 정현준게이트, 진승현 게이트로 불거져 나온 것이며, 최근 터져 나오는 각종 게이트들도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여권의 무리한 자금 조성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야당 주장의 사실 여부는 확인할 필요가 있겠지만, 최소한 이러한 게이트들이 현 정권의 태생적 한계와 타락상을 보여주는 사건임에는 분명하다고 여겨진다. '인재 풀'이 빈약한 현 정권이 특정 지역 출신들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국가 공조직과 사조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게 됐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비호와 '검은 돈'이 거래되었다는 일부의 주장이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처럼 낭설과 진실, 공익과 사리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상황에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형 의혹들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정부의 도덕성과 개혁의지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판국에 현 정부가 해야할 것은 단 하나의 선택밖에 없다. 철저한 사실 조사와 적절한 사법적 처리이다. 물론 현 정부나 집권 여당으로서는 이 문제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많은 정치적 고려사항이 있을 줄 믿는다. 내년의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에 미칠 영향 또한 따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조금이라도 철저한 조사를 회피한다고 여겨지면 국민들의 의혹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이들 의혹 사건은 '국민의 정부'의 개혁성과 민주성을 가름할 시금석이다. 또한 이들 사건에 관한 한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철저한 정치적 고려이다. 현 정부로서는 법이 정한 절차와 테두리 안에서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만이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그렇게 할 때 오히려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도 조금이나마 증가할 것이다.
개혁성을 정권의 정당성으로 내건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유감스럽게도 유언비어는 더욱 무성해졌다.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사실로 드러났을 듯한 일들이 거듭된다는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언비어는 그 사회가 얼마나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민주적인가를 보여주는 간접적인 척도이다.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투명성이 증가하여 더 이상 유언비어가 사실 전달의 기능을 갖지 않는 사회, 더 근본적으로는 유언비어가 생겨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할 것을 기대해 본다.
유언비어 없는 사회를 기다린다
소위 "유언비어"라는 것이 횡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시간이 지나서 보면 '흐르는 물과 뛰는 메뚜기가 전해주는' 그 말들이 족집게 점쟁이보다도 더 정확하게 사실을 꿰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그 때문인지 그 때는 이 유언비어라는 출처불명의 소문을 '날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포만 해도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 우리는 유언비어는 권위주의 정권의 탓으로만 여겼다. 권위주의의 폭압 하에서 정상적인 언론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 탓에 그 틈새를 유언비어가 채우게 되었으며, 유언비어의 성격상 권위주의정권이 직접적인 통제를 하기가 어려운 만큼 사실에 근접했다고 생각했다. 유언비어는 권위주의 하에서 경색된 언로를 뚫는 소중한 역할을 맡았다. 이것은 유언비어에 관한 표준적인 사회학적 설명이기도 했다.
권위주의의 유물이라고만 생각했던 유언비어가 명색이 '문민 2기'라고 하는 '국민의 정부' 하에서도 계속 나돈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케 하는 현상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진짜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며, 유언비어는 그야말로 근거 없는 낭설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유언비어가 사실을 전하고 있으며, 외견상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속내로는 민주화가 철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우리의 희망사항은 전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현 정부 집권 후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유언비어'가 양산되고 있다. 진원지는 옷로비사건, 한빛은행 부정대출, 정현준게이트, 진승현게이트, 이용호게이트, 분당 백궁역 주변지역 용도변경의혹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각종 의혹들이다. 특히 3대 게이트는 그 동안 끈질기게 나돌던 증권시장을 통한 여권의 정치자금 조달설을 확인시켜주는 듯한 의혹들이 최근의 각종 게이트들은 등장인물들이 이리저리 얽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현 정권의 기반인 특정 지역을 고리로 한 권력형 비리 의혹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동일하다. 설익은 벤처기업가들이 권력층의 비호를 받아 일확천금을 노렸고, 일부 등장인물이 겹치고 권력과 돈이 오갔다는 점에서 "세 쌍둥이"이라고 할 만큼 닮은 꼴이다. 단적인 증거로 김영재 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이 세 사건에 다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있고, 김형윤 전 국정원 단장 역시 동방금고사건과 이용호씨 사건에 모두 관련돼 있다. 또 정현준씨의 정-관계 로비 창구로 지목되자 미국으로 도피한 오기준 전 신양팩토링 사장과 이용호씨의 로비 창구였던 여운환씨는 광주 주먹계 선-후배 사이로 알려져 있다.
야당에서는 최근에 온갖 게이트가 빈번히 터져나오는 것이 여권의 정치자금 조성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작년 총선 전 막대한 정치자금을 벤처기업과 코스닥시장을 통해 조성한 여파가 정현준게이트, 진승현 게이트로 불거져 나온 것이며, 최근 터져 나오는 각종 게이트들도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여권의 무리한 자금 조성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야당 주장의 사실 여부는 확인할 필요가 있겠지만, 최소한 이러한 게이트들이 현 정권의 태생적 한계와 타락상을 보여주는 사건임에는 분명하다고 여겨진다. '인재 풀'이 빈약한 현 정권이 특정 지역 출신들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국가 공조직과 사조직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게 됐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비호와 '검은 돈'이 거래되었다는 일부의 주장이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처럼 낭설과 진실, 공익과 사리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상황에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형 의혹들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정부의 도덕성과 개혁의지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판국에 현 정부가 해야할 것은 단 하나의 선택밖에 없다. 철저한 사실 조사와 적절한 사법적 처리이다. 물론 현 정부나 집권 여당으로서는 이 문제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많은 정치적 고려사항이 있을 줄 믿는다. 내년의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에 미칠 영향 또한 따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조금이라도 철저한 조사를 회피한다고 여겨지면 국민들의 의혹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이들 의혹 사건은 '국민의 정부'의 개혁성과 민주성을 가름할 시금석이다. 또한 이들 사건에 관한 한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철저한 정치적 고려이다. 현 정부로서는 법이 정한 절차와 테두리 안에서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만이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그렇게 할 때 오히려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도 조금이나마 증가할 것이다.
개혁성을 정권의 정당성으로 내건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유감스럽게도 유언비어는 더욱 무성해졌다.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사실로 드러났을 듯한 일들이 거듭된다는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언비어는 그 사회가 얼마나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민주적인가를 보여주는 간접적인 척도이다.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투명성이 증가하여 더 이상 유언비어가 사실 전달의 기능을 갖지 않는 사회, 더 근본적으로는 유언비어가 생겨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할 것을 기대해 본다.
이영조(경희대학교 교수/정치학)
출처 - 비전@한국홈페이지 회원칼럼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