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여성을 관련지은 논문 한 편을 읽었다. 그 연구는 「미디어는 사회에 존재하는 남녀 불평등적 요소를 더욱 강화시키는 사회적 기구」라는 실증을 담고 있었다. 지금까지 여성이 가장 극심하게 배제되어온 정치영역에 들어선 여성장관들이 신문에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중앙일간지 기사의 담론을 통해 분석한 것이었다.
분석결과를 보면, 여성장관에 관한 기사취급의 빈도는 남성장관과 비슷했지만 그 주제가 업무보다는 私的인 면에 치중돼 있고, 어휘도 여성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키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여성장관은 남성장관에 비해 수동적이고 능력 면에서 어딘지 떨어진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 신문들은 대체로 장관직에 있는 여성을 능력이나 자질이 모자란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남성=公的, 여성=私的」이라는 남녀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화시켰으며, 이와 같은 고정관념이 여성의 정치참여에 가장 큰 저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 외신기사는 어떨까? 힐러리에 관한 기사를 인용한다. 내용은 클린턴이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후 한동안 국사에서 손을 떼고 내조에 전념하는 전형적인 퍼스트 레이디로 돌아간 듯 했던 힐러리가 정계 일선에 복귀했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의 제목은 "다시 설치는 힐러리" "클린턴 재선에 앞장섰다" 였고, "대통령이 되면 부인 기용 않겠다"는 밥 돌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의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힐러리의 역할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너무나 설친다는 것이다"로 마무리지었다. 이 기사의 원문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외신 작성은 단순한 번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식'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에, 아마 이 경우도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한국식' 사고방식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다소 장황하게 신문에 나타난 여성상을 늘어놓은 것은 언론의 자세를 비판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현주소를 검증해 보자는 취지에서다.
우리 나라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 남녀에 관한 종래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려는 정부의 의욕과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큰 기둥 몇 개를 추려보면, 2001년 1월에 여성특위가 '여성부'로 확대 개편됐고, 7월에는「21세기 남녀평등헌장」이 선포됐으며, 11월부터는 '모성관련법'이 시행된다. 이보다 훨씬 앞서 1995년에는 여성의 공직참여 비율을 높이고, 공기업에 여성고용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이른 바「고용할당제」와 「가산점제」를 도입했다.
여성부는 1988년에 신설된 '정무2장관실'이 '국민의 정부' 들어 '여성특별위원회'로 축소, 격하됐다가 다시 확대, 승격된 기구이다. 어쨌든 여성부 출범은 여성들에겐 고무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씁쓸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정부가 우리 사회에 만연돼있는 성차별을 시정하겠다는 의지를 공식 표명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뿌리깊은 성차별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의 지위가 아주 열악하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통계로 실증되고 있다. 저개발국보다도 못한 꼴찌 권에서 항상 맴돌고 있다.
현재 여성부나 여성청이 설치된 나라는 9개국이다. 뉴질랜드,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네팔, 파키스탄은 여성부를,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스위스는 여성청을 두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 여성부를 두고 있는 나라는 뉴질랜드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모성보호법,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이 여성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임산부에 대한 보호는 강화하되, 그 동안 있었던 여성을 과보호한 조항은 완화했다. 국제적으로 여성정책이 보호보다는 평등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사회 도처에는 여전히 불평등한 관행과 제도 및 의식이 상존 하고 있어 아직도 한국 여성이 가야 할 길은 멀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증대되고는 있다고 하지만 상위직이나 전문직 분야가 아닌 하위직, 비전문직 분야에 훨씬 많이 분포돼 있다.
1995년 당시 여성고용할당제가 발표됐을 때 언론기관에는 독자투고가 쇄도했다. 주로 남성들의 소리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할당제에 대한 오해의 목소리, 다른 하나는 여성 때문에 상대적 불이익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불만이었다. 이런 투고가 잘못됐다고 매도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내용이 잘못된 여성관 내지는 고용할당제에 대한 오해의 소산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고용할당제란 성차별이라는 장벽에 부딪쳐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여성에게 일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기회가 차단되어 능력을 키울 수 없고, 능력이 없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나 방치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강력한 장치로 도입된 것이 바로 여성고용할당제다. 물론 이 제도에 따라 여성을 더 뽑는다해도 남성의 몫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여성은 정원 외로 뽑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알고 나면 남성들이 불평할 일도 아니다.
"21세기 남녀평등헌장"은 앞으로 한국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성차별 문제에 대해 정부가 그 방향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헌장에는 가정에서 남녀의 역할은, 물론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의 남녀평등 실천목표가 제시돼 있다. 특히 자녀양육의 책임을 남성도 나눠 가지도록 명문화했다. 또 임신과 출산을 가정사나 여성만의 일이 아닌 사회적인 기여로 인정한 점도 지금까지의 관점과 다르다. 이 항목은 그 동안 여성이 출산과 육아로 겪었던 불이익을 없애는데 한몫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헌장 7개 항목 모두 선언적인 내용이어서, 구체적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실생활에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법이 현실을 이끄는 견인차 노릇'을 해야한다는 대 전제에서 보면 이 같은 조처들은 바람직한 것이다.
흔히 남성들은 "한국처럼 여권이 신장된 나라가 어디 있느냐" "봉급을 통째로 집사람에게 갖다준다"는 말을 무슨 표어나 되는 것처럼 즐겨 쓰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그 이유를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끝으로, 남성우월주의자들에게 묻고 또 말하고 싶다. 직장 동기생 남성들은 다 승진하는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제 자리 걸음을 하는 경우, 여성들이 얼마나 소외감, 패배감, 분노에 사로잡힐지 생각해 보았는가? 남자도 취직이 어려운 마당에 여자가 무슨 남성의 자리를 넘보고 빼앗느냐고 흰 눈으로 흘긴 일은 없는가? 남녀평등, 성차별 불식은 남성과는 아무 상관없고, 여성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남녀평등이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누이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남녀평등 사회를 위하여
미디어와 여성을 관련지은 논문 한 편을 읽었다. 그 연구는 「미디어는 사회에 존재하는 남녀 불평등적 요소를 더욱 강화시키는 사회적 기구」라는 실증을 담고 있었다. 지금까지 여성이 가장 극심하게 배제되어온 정치영역에 들어선 여성장관들이 신문에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중앙일간지 기사의 담론을 통해 분석한 것이었다.
분석결과를 보면, 여성장관에 관한 기사취급의 빈도는 남성장관과 비슷했지만 그 주제가 업무보다는 私的인 면에 치중돼 있고, 어휘도 여성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키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여성장관은 남성장관에 비해 수동적이고 능력 면에서 어딘지 떨어진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 신문들은 대체로 장관직에 있는 여성을 능력이나 자질이 모자란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남성=公的, 여성=私的」이라는 남녀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화시켰으며, 이와 같은 고정관념이 여성의 정치참여에 가장 큰 저해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 외신기사는 어떨까? 힐러리에 관한 기사를 인용한다. 내용은 클린턴이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후 한동안 국사에서 손을 떼고 내조에 전념하는 전형적인 퍼스트 레이디로 돌아간 듯 했던 힐러리가 정계 일선에 복귀했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의 제목은 "다시 설치는 힐러리" "클린턴 재선에 앞장섰다" 였고, "대통령이 되면 부인 기용 않겠다"는 밥 돌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의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힐러리의 역할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너무나 설친다는 것이다"로 마무리지었다. 이 기사의 원문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외신 작성은 단순한 번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식'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에, 아마 이 경우도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한국식' 사고방식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다소 장황하게 신문에 나타난 여성상을 늘어놓은 것은 언론의 자세를 비판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현주소를 검증해 보자는 취지에서다.
우리 나라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 남녀에 관한 종래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려는 정부의 의욕과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큰 기둥 몇 개를 추려보면, 2001년 1월에 여성특위가 '여성부'로 확대 개편됐고, 7월에는「21세기 남녀평등헌장」이 선포됐으며, 11월부터는 '모성관련법'이 시행된다. 이보다 훨씬 앞서 1995년에는 여성의 공직참여 비율을 높이고, 공기업에 여성고용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이른 바「고용할당제」와 「가산점제」를 도입했다.
여성부는 1988년에 신설된 '정무2장관실'이 '국민의 정부' 들어 '여성특별위원회'로 축소, 격하됐다가 다시 확대, 승격된 기구이다. 어쨌든 여성부 출범은 여성들에겐 고무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씁쓸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정부가 우리 사회에 만연돼있는 성차별을 시정하겠다는 의지를 공식 표명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뿌리깊은 성차별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의 지위가 아주 열악하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통계로 실증되고 있다. 저개발국보다도 못한 꼴찌 권에서 항상 맴돌고 있다.
현재 여성부나 여성청이 설치된 나라는 9개국이다. 뉴질랜드,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네팔, 파키스탄은 여성부를,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스위스는 여성청을 두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 여성부를 두고 있는 나라는 뉴질랜드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모성보호법,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이 여성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임산부에 대한 보호는 강화하되, 그 동안 있었던 여성을 과보호한 조항은 완화했다. 국제적으로 여성정책이 보호보다는 평등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사회 도처에는 여전히 불평등한 관행과 제도 및 의식이 상존 하고 있어 아직도 한국 여성이 가야 할 길은 멀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증대되고는 있다고 하지만 상위직이나 전문직 분야가 아닌 하위직, 비전문직 분야에 훨씬 많이 분포돼 있다.
1995년 당시 여성고용할당제가 발표됐을 때 언론기관에는 독자투고가 쇄도했다. 주로 남성들의 소리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할당제에 대한 오해의 목소리, 다른 하나는 여성 때문에 상대적 불이익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불만이었다. 이런 투고가 잘못됐다고 매도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내용이 잘못된 여성관 내지는 고용할당제에 대한 오해의 소산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고용할당제란 성차별이라는 장벽에 부딪쳐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여성에게 일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기회가 차단되어 능력을 키울 수 없고, 능력이 없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나 방치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강력한 장치로 도입된 것이 바로 여성고용할당제다. 물론 이 제도에 따라 여성을 더 뽑는다해도 남성의 몫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여성은 정원 외로 뽑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알고 나면 남성들이 불평할 일도 아니다.
"21세기 남녀평등헌장"은 앞으로 한국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성차별 문제에 대해 정부가 그 방향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헌장에는 가정에서 남녀의 역할은, 물론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의 남녀평등 실천목표가 제시돼 있다. 특히 자녀양육의 책임을 남성도 나눠 가지도록 명문화했다. 또 임신과 출산을 가정사나 여성만의 일이 아닌 사회적인 기여로 인정한 점도 지금까지의 관점과 다르다. 이 항목은 그 동안 여성이 출산과 육아로 겪었던 불이익을 없애는데 한몫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헌장 7개 항목 모두 선언적인 내용이어서, 구체적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실생활에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법이 현실을 이끄는 견인차 노릇'을 해야한다는 대 전제에서 보면 이 같은 조처들은 바람직한 것이다.
흔히 남성들은 "한국처럼 여권이 신장된 나라가 어디 있느냐" "봉급을 통째로 집사람에게 갖다준다"는 말을 무슨 표어나 되는 것처럼 즐겨 쓰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그 이유를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끝으로, 남성우월주의자들에게 묻고 또 말하고 싶다. 직장 동기생 남성들은 다 승진하는데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제 자리 걸음을 하는 경우, 여성들이 얼마나 소외감, 패배감, 분노에 사로잡힐지 생각해 보았는가? 남자도 취직이 어려운 마당에 여자가 무슨 남성의 자리를 넘보고 빼앗느냐고 흰 눈으로 흘긴 일은 없는가? 남녀평등, 성차별 불식은 남성과는 아무 상관없고, 여성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남녀평등이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누이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김영신 (세종대 겸임교수/신문방송학)
출처 - 비전@한국홈페이지 회원칼럼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