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문제, 정치로 풀지말라
2002-06-20
경제문제, 정치로 풀지말라 1997년 한국 등 아시아의 위기는 위기에 대한 기존의 경제이론을 대폭 수정시켰다. 전통적인 기초 요인에 상관없이 대내외적 충격에 대한 취약성이 상존해 있는 상황에서는 자본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투자자들의 기대 변화만으로도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는 점이 새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외적 충격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개도국의 특성상 위기 재발을 방지하려면 충격을 증폭시킬 수 있는 대내적 불안 요인을 사전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웠다. 하이닉스-경협 등 경제왜곡 이 중에서도 정치 관련 불안 요인들은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로 시장원리의 작동이 부분적으로나마 마비될 경우 경제시스템 내의 압력이 높아지며, 이는 결국 우리 경제의 충격에 대한 대응능력을 크게 잠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초 여건이 강화된 현 상황에서 위기 재발 여부는 정치논리를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가에 달려 있다. 정치적 요인이 우세할수록 착시현상은 쉽게 나타날 수 있고 향후 우리가 짊어져야 할 부담에 스스로 관대해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좌우되는 경제의 왜곡현상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당초의 목적이야 어쨌든 폭로성 이슈 발굴을 통해 정치적 이해를 도모하는 일이다. 둘째,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을 시장여건이나 추진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남발하는 경우다. 셋째, 처리해야 할 과제들을 지연시키거나 앞당기는 상황이다. 첫번째, 정치적 왜곡의 예는 문제의 원인 처방보다 인사 조치 등의 형태로 즉각 처리된다. 시장원리를 정치적 보호막으로 차단하면서 수없이 되풀이되는 게이트는 이제 정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둘째, 대북경협이나 역내 협력 등 정작 국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사안들은 의견조율 과정에서의 충분한 검토를 생략한 채 처리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시장여건이 구비되지 못해 되풀이되는 경기부침 관련 문제만 해도 처방 위주의 정책 대응만 거론하는 구습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셋째, 한국 경제의 현안으로 남아 있는 하이닉스 등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납세자의 부담을 담보로 시간을 끄는 대표적인 경우다. 공적 자금문제도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치문제화되었다. 이같이 사안의 경중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하고 단기에 해결 불가능한 사안을 집중 부각시키는 정치논리의 경제지배 현상은 향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더불어 우리 경제의 잠재적 불안 요인임에 틀림없다. 사실 정치로 인한 경제부문의 왜곡은 정책담당자가 아니라 이를 묵인하고 있는 납세자와 시장 왜곡으로 생성된 과도한 혜택을 독점하는 소수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결국 정치적 이해관계로 제공되는 추가 혜택의 반대급부는 정치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왜곡된 결정체계와 이로 인해 형평성이 결여된 납세 부담의 가중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납세자들의 불분명한 태도와 상황에 대한 객관적 분석의 결여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차단하는가에 달려 있다. 불행히도 유능한 관료집단은 시장원리가 부분적으로 작동하는 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문제를 그때 그때 처리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정작 중요한 국익 차원의 전략 마련이나 대외협상 건에 대해서는 제대로 준비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즉 주요 사안을 주로 단기 현안 해결 차원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정치논리 개입의 여지가 많은 체제 상의 문제는 오히려 방치되기 쉽다. 경제사회체제 전반에 걸쳐 객관적 평가를 해줄 수 있는 전문인력층도 소외되기는 마찬가지다. 시장 감시기능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변질되었고 자율적 상시 구조조정이 불가능한 시장환경은 여전히 묵시적인 상부의 지침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정치논리 침투 막을 대책을 결국 앞으로 정치 시즌에 경제문제가 기존의 족쇄에서 벗어나려면 정치논리가 침투할 수 없는 납세 부담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설명이 제시되어야 한다. 분석 결과마저 정치적으로 왜곡될 소지가 있는 여건일수록 신뢰할 만한 기준이 제시되고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정치논리 우위가 소멸될 것이다. 특히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제 현안과 관련해 신속한 피상적 처리보다는 재정우위(fiscal dominance)의 예상된 결과가 합의되는 과정에서 최대한 다양한 의견 제시와 평가가 반영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경제에 미치는 정치적 요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대내외 충격에 견뎌낼 수 있는 튼튼한 경제의 건설 여부는 납세자들의 현 상황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일관된 의사 표명에 달려 있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출처 - 동아일보 2002. 6. 2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