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와 민심의 바다
	2002-06-16
지방선거와 민심의 바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한나라당의 압승과 민주당의 패배로 귀결되었다．아마도 지금까지 어느 한 정당이 이토록 압승하고 다른 정당이 이토록 일패도지한 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그동안 국정의 실패,대통령아들의 구속으로 이미 민주당의 패배를 예견할 수 있었다． 여론조사의 결과도 이를 반영하고 있었다．그럼에도 민주당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이번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그러나 민심은 언제나 가혹하리만치 정확하고 엄정하다． 선거에는 결코 ‘혹시나’가 없다．작은 일렁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바다는 조용하기만 하다． 민심의 바다 역시 사소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민심의 큰 흐름을 변함없이 담고 있다.정치인들은 여론조작과 기술적인 선거캠페인에 의해 민심과 선거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그대신 정말 좋은 정치를 통해 민심을 얻고 선거에 이길 생각을 해야 한다． 국정에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집권여당이 이번 선거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염치없는 일이었던가．이번 선거 결과는 바로 집권여당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대승한 한나라당도 알아야 할 것이 있다．무엇보다도 투표율이 40%선에 머물렀다는 사실이다．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이제 과반수의 유권자도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투표율이 내려가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우리나라의 유권자들은 선진국의 선거무관심과는 다르다．택시 안에서,동창회 모임에서,술집에서 그 어디에서도 정치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그럼에도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정치인들에 대한 절망이고 실망이다． 도대체 찍을 사람이 없다는 하소연을 도처에서 듣게 된다．투표율 저하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선진국의 일반화된 현상이라고 치부할 일도 아니다． 이번에 전국에서 8%대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자민련을 제치고 제3당으로 도약한 민주노동당에 표가 쏟아진 것도 심상한 일이 아니다．지금까지 정치권의 주도적 역할을 해 왔던 거대정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에 잇닿아 있다． 국민들은 희망을 주는 새로운 대안적 정치를 갈망하고 있다．만약 기존의 거대정당들이 그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국민은 무대위의 배우를 갈아치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선거이기도 하였다． 이제 공은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한나라당은 작은 대한민국이라고 불리워지는 서울특별시를 비롯해 부산,대구,인천 등 대부분의 광역지방자치단체,전국 232 개 기초자치단체장 가운데 130곳,서울 25개 구청장의 22곳을 차지했다． 최근 민주당 의원의 선거법위반에 따른 의원직 무효로 이제 국회 의석도 과반수가 넘어섰다．대통령의 인기 추락과 당적 이탈로 민주당이 여당의 프리미엄도 잃었다．이렇게 보면 사실상 한나라당의 집권이 시작된 셈이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은 집권당의 실수와 실패의 반사적 이익을 누려온 측면이 적지 않다．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의 실패는 그동안 대통령 주변을 비롯한 정부여당 인사들의 부패와 비리,사회전반에 걸친 부진한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불만에서 비롯된다． 유감스럽게도 한나라당 역시 이러한 요소로부터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수구와 반개혁적이라는 비판도 있다．이번 지방선거의 승리로 사실상 집권당의 위상을 가지게 된 한나라당은 이제 비판하는 입장에서 비판받는 입장으로 변하게 된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어찌 기쁘고 반갑기만 한 일인가． 선거에서의 패배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이다．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승리의 밑거름이 되며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패배로 이어질 수도 있다．이제 6개월쯤 후면 대통령선거가 있다．이번 지방선거는 다가오는 대선의 전초전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대선에서 웃을 수 있는 정당이 마지막 승자일 수 있다． 그 승패는 결국 오늘 이 선거결과를 어떻게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민심을 어떻게 제대로 파악하느냐에 달려있다．다행히 패배한 민주당은 자기 혁신과 재정비를 다짐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승리의 축배를 자제하며 자만을 경계하고 있다．오늘 이 결심과 경계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원순 (변호사) 출처 - 국민일보 2002. 6. 17 시사풍향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