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보험 재정 통합 문제가 정부와 정치권의 절충에 따라 1년 6월의 유예로 결론이 났으나 근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건강 보험 재정을 통합하는가 분리하는가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얽혀 있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양쪽의 논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에 관하여는 지금까지 학계에서나 정책 담당자, 언론 등에서 충분히 논의되었기에 여기에서 이를 언급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건강보험의 성격을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며 유예 이후 해야할 일을 제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건강보험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논의하여야 할 "진짜 문제"가 또렷해지는 까닭이다. 실제로 건강보험의 성격을 잘 모르고, 특히 사보험(私保險)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재정 통합 문제를 논의할 때 개중에는 건강보험과 사보험의 성격이 같다는 것을 전제로 논리를 전개하는 경우도 있고,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재정 통합"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엉뚱한 토론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첫째, 건강보험은 보험의 성격을 띤다. 보험이란 여럿이서 예기치 못하는 위험에 대비하여 돈을 모으고 위험에 닥친 사람에게 그 돈을 모아 주는 것이다. 내가 낸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는 저축과는 그 성질이 전혀 다른 것이다. 보험에서는 결과에 따라 이익을 받을 수도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은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국민들)이 평소에 낸 돈을 모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사회적 장치이다. 곧, 건강보험에서는 가입자의 건강이 위협을 받을 때 치료를 보장받는 것이다. 특히 보험회사 아줌마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저축의 성격을 강조하며, 예컨대,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만기가 되면 보험금 중의 일부를 나중에 돌려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며, 가입을 권유하는 사보험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사보험의 경우, 가입한 사람의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내 놓는다. 특히 사람들이 보험에 잘 가입하지 않으니까 저축성을 띤 보험 상품도 내 놓지만, 건강보험은 전혀 저축성을 띠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건강보험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내가 낸 만큼 돌려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부에서 시행하는 건강보험 자체를 사보험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건강보험에서 "내가 낸 만큼 돌려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건강보험 재정 통합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 보험 자체의 설계에 관한 문제가 된다.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하나의 스펙트럼 위에서 여러 가지로 설계될 수 있다. 곧, 한 쪽 끝에는 철저히 사보험에 의존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철저히 정부가 국민 의료를 책임지는 방법이 있으며, 그 중간에 여러 가지 장치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의는 건강 보험 재정 통합보다 더 큰 틀의 또 다른 문제라 볼 수 있기에 여기에서 논의하지 않는다.
둘째, 건강보험에서 보험료는 능력(소득)에 따라 부과된다. 그러나 보험료를 낸 만큼 그 혜택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곧, 얼마를 냈든 상관없이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의료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험료는 능력에 따라 부과되지만, 혜택은 필요에 따라 받는 것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사회주의식 사고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건강보험이다(그렇지만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을, 건강한 노동력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 장치이다). 그러므로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에서 내는 갹출금은 보험료라 부르기보다는 기여금이라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 재정 통합에서 논란이 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보험료의 부과 문제이다. 지역건강보험 재정과 직장 건강보험 재정을 통합하는 경우, 직장에 있는 사람은 소득이 노출되어 있으나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의 소득 파악률이 낮은 것이 문제로 등장한다. 그러니,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건강보험 재정 통합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정확한 소득 파악 여부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득을 어떻게 하면 더 정확히 파악할 것인가"의 문제는 건강보험료에서뿐만 아니라, 소득세 징수의 형평성과 관련하여서도, 국민 연금과 관련하여서도, 사회적 통합을 위해 매우 중요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제대로 파악된 소득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고, 사회보험료를 부과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근원은 국민들에게 "정당한 부담"을 강요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월급쟁이들의 불만은 자신이 내는 세금이나 사회보험료가 소득이 노출되지 않는 고소득자보다 더 많이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고, 소득 파악률을 높이는 방법부터 강구해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건강보험 재정 통합의 문제는 계속 쳇바퀴 돌듯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건강보험은 사회보험 가운데 가장 "소득 재분배적 성격"이 강하다. 건강보험에서의 의료 혜택은 그 동안 냈던 기여금과 관계가 전혀 없는 까닭이다. 예컨대, 늙은 후의 소득에 대처하기 위한 국민 연금과 비교해 보면 이러한 성격이 더욱 뚜렷해 진다. 국민연금 역시 사회보험으로서 소득에 따라 기여금을 부담하지만, 나중에 받는 연금은 평소에 냈던 기여금을 기준으로 산출된다(그렇지만, 냈던 돈만큼 받는 것은 아니며, 더 받을 수도 있고, 덜 받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소득이 적었던 사람은 더 받게 되고, 소득이 많았던 사람은 덜 받게 되는 "소득 재분배적 성격"을 띠게 된다). 반면에 건강보험은 기여금에 따라 의료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낸 기여금과는 상관없이 누구든지 동등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이 "보험회사에 드는 민간의료보험"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이러한 성격을 알고, "내가 낸 보험료로 아픈 이웃을 도와 준다"고 생각하면 건강보험료 내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정확하게 소득이 파악되고 보험료가 제대로 징수된다면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의료보험료 내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부에서 시행하는 사회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 제도 자체를 반대하고, 개인의 건강을 사보험(私保險)에 의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일 것이니, 이것 역시 여기에서 논할 바가 아니다.
넷째, 건강보험은 강제성을 띤다. 건강보험은 사회보험(社會保險)이기 때문이다. 누가 가입하기 싫다고 가입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보험은 보험료를 무는 개인의 의사에 따라 가입할 수도 있고, 가입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가입하더라도 중간에 해지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보험인 까닭에 국민 모두가 개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입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험료 갹출금의 부과나 징수 역시 강제성을 띤다.
이와 같은 강제성 때문에 건강 보험료의 부과나 징수에서는 더더욱 소득에 따른 형평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정확한 소득 파악 및 징수의 문제로 되돌아간다. 곧, 건강보험의 재정을 통합하든 분리하든, 무엇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소득 파악의 문제인 것이다. 곧, 건강보험 재정 통합의 문제는 우선 소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후, 건강보험의 "재분배적 성격"에 관해 이견을 좁혀야 한다고 본다. 만약 재분배적 성격을 강조한다면 건강보험 재정은 통합되어야 할 것이고, 만약 재분배적 성격을 부인한다면 건강보헌 재정의 분리, 나아가서는 정부가 시행하는 건강보험이 아니라 사보험에 의지하는 의료 체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논의 진행 과정으로 볼 때, 건강보험 재정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건강보험의 재분배적 성격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소득 파악과 징수만 이루어진다면, 건강보험 재정 통합은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건보 재정 통합에 관한 그 많은 논의 가운데에서 아직까지도 "소득 파악 방법"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이루어진 논의는 거의 없다.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률이 30%에도 못미치고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에서 어떻게 소득을 파악하고 있는지 조차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보험 재정 통합의 문제보다 어떻게 하면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할 것인가?"의 문제에 관하여 중지(衆智)를 모으고, 연구하고, 방법을 개발해 내고, 그리고, 그러한 방법들을 검토하고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난 후, 건강보험 재정의 운용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 위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합의 목적을 재확인하자. 경제적인 능력에 부합하는 보험료를 부과하고 필요에 따라 사용하게 함으로써 국민연대를 기하고, 부자 조합이 가난한 조합을 도와 농어민의 보험료를 낮추고 농어민조합이 국고지원 없이 재정자립을 가능하게 하며 관리의 효율을 통해 관리비를 획기적으로 줄이자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정부와 정치권은 재정통합 1년 6개월 유예로 번 시간을 현재의 통합추진방식이 이런 목적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경제적 능력에 부합하는 보험료부과방법을 단기간에 개발하는 것이 가능한가?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률 제고가 단기간에 가능한가? 아마 불가능하다면 대안이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굳이 전국민을 단일 관리코자 한다면 재원조달방법을 바꿀 필요는 없는가?
셋째, 이미 지역주민,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보험료의 일부가 국고에서 지원되고 있고 담배판매에서 일부를 지원하고 있는 만큼, 건강보장세를 추가하는 등의 재원조달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진료비 심사기구만 필요하기 때문에 관리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만일 이런 방식의 재원조달이 어렵다면 두 집단을 분리시켜 2원관리체제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재정분리 시에도 과거의 전례에 따라 노인의료비는 공동으로 조달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준비금 적립금의 고갈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법적 적립금은 6개월분의 보험 급여비인데 통합과 의약분업 과정에서 모두 소진되었다. 정책실패가 낳은 결과임으로 이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할 것이다. 일원화이건 이원화이건 모두 통합체계이므로 선진국이 제안하고 있는 분권화와 경쟁원리를 통합체계에 적절하게 접목시킬 수 있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통해 국민 대다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이를 효율적으로 시행할 때 정책실패의 아픈 과거를 치유할 수 있음을 정부와 정치권, 노동자와 경영자모도가 유념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번 실패의 사례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만 새로운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보험재정통합 유예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나?
건강 보험 재정 통합 문제가 정부와 정치권의 절충에 따라 1년 6월의 유예로 결론이 났으나 근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건강 보험 재정을 통합하는가 분리하는가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얽혀 있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양쪽의 논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에 관하여는 지금까지 학계에서나 정책 담당자, 언론 등에서 충분히 논의되었기에 여기에서 이를 언급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건강보험의 성격을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며 유예 이후 해야할 일을 제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건강보험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논의하여야 할 "진짜 문제"가 또렷해지는 까닭이다. 실제로 건강보험의 성격을 잘 모르고, 특히 사보험(私保險)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재정 통합 문제를 논의할 때 개중에는 건강보험과 사보험의 성격이 같다는 것을 전제로 논리를 전개하는 경우도 있고,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재정 통합"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엉뚱한 토론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첫째, 건강보험은 보험의 성격을 띤다. 보험이란 여럿이서 예기치 못하는 위험에 대비하여 돈을 모으고 위험에 닥친 사람에게 그 돈을 모아 주는 것이다. 내가 낸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는 저축과는 그 성질이 전혀 다른 것이다. 보험에서는 결과에 따라 이익을 받을 수도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은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국민들)이 평소에 낸 돈을 모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사회적 장치이다. 곧, 건강보험에서는 가입자의 건강이 위협을 받을 때 치료를 보장받는 것이다. 특히 보험회사 아줌마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저축의 성격을 강조하며, 예컨대,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만기가 되면 보험금 중의 일부를 나중에 돌려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며, 가입을 권유하는 사보험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사보험의 경우, 가입한 사람의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내 놓는다. 특히 사람들이 보험에 잘 가입하지 않으니까 저축성을 띤 보험 상품도 내 놓지만, 건강보험은 전혀 저축성을 띠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건강보험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내가 낸 만큼 돌려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부에서 시행하는 건강보험 자체를 사보험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건강보험에서 "내가 낸 만큼 돌려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건강보험 재정 통합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 보험 자체의 설계에 관한 문제가 된다.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하나의 스펙트럼 위에서 여러 가지로 설계될 수 있다. 곧, 한 쪽 끝에는 철저히 사보험에 의존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철저히 정부가 국민 의료를 책임지는 방법이 있으며, 그 중간에 여러 가지 장치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의는 건강 보험 재정 통합보다 더 큰 틀의 또 다른 문제라 볼 수 있기에 여기에서 논의하지 않는다.
둘째, 건강보험에서 보험료는 능력(소득)에 따라 부과된다. 그러나 보험료를 낸 만큼 그 혜택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곧, 얼마를 냈든 상관없이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의료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험료는 능력에 따라 부과되지만, 혜택은 필요에 따라 받는 것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사회주의식 사고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건강보험이다(그렇지만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을, 건강한 노동력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 장치이다). 그러므로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에서 내는 갹출금은 보험료라 부르기보다는 기여금이라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 재정 통합에서 논란이 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보험료의 부과 문제이다. 지역건강보험 재정과 직장 건강보험 재정을 통합하는 경우, 직장에 있는 사람은 소득이 노출되어 있으나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의 소득 파악률이 낮은 것이 문제로 등장한다. 그러니,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건강보험 재정 통합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정확한 소득 파악 여부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득을 어떻게 하면 더 정확히 파악할 것인가"의 문제는 건강보험료에서뿐만 아니라, 소득세 징수의 형평성과 관련하여서도, 국민 연금과 관련하여서도, 사회적 통합을 위해 매우 중요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제대로 파악된 소득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고, 사회보험료를 부과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근원은 국민들에게 "정당한 부담"을 강요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월급쟁이들의 불만은 자신이 내는 세금이나 사회보험료가 소득이 노출되지 않는 고소득자보다 더 많이 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고, 소득 파악률을 높이는 방법부터 강구해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건강보험 재정 통합의 문제는 계속 쳇바퀴 돌듯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건강보험은 사회보험 가운데 가장 "소득 재분배적 성격"이 강하다. 건강보험에서의 의료 혜택은 그 동안 냈던 기여금과 관계가 전혀 없는 까닭이다. 예컨대, 늙은 후의 소득에 대처하기 위한 국민 연금과 비교해 보면 이러한 성격이 더욱 뚜렷해 진다. 국민연금 역시 사회보험으로서 소득에 따라 기여금을 부담하지만, 나중에 받는 연금은 평소에 냈던 기여금을 기준으로 산출된다(그렇지만, 냈던 돈만큼 받는 것은 아니며, 더 받을 수도 있고, 덜 받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소득이 적었던 사람은 더 받게 되고, 소득이 많았던 사람은 덜 받게 되는 "소득 재분배적 성격"을 띠게 된다). 반면에 건강보험은 기여금에 따라 의료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낸 기여금과는 상관없이 누구든지 동등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이 "보험회사에 드는 민간의료보험"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이러한 성격을 알고, "내가 낸 보험료로 아픈 이웃을 도와 준다"고 생각하면 건강보험료 내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정확하게 소득이 파악되고 보험료가 제대로 징수된다면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의료보험료 내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부에서 시행하는 사회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 제도 자체를 반대하고, 개인의 건강을 사보험(私保險)에 의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일 것이니, 이것 역시 여기에서 논할 바가 아니다.
넷째, 건강보험은 강제성을 띤다. 건강보험은 사회보험(社會保險)이기 때문이다. 누가 가입하기 싫다고 가입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보험은 보험료를 무는 개인의 의사에 따라 가입할 수도 있고, 가입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가입하더라도 중간에 해지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보험인 까닭에 국민 모두가 개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입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험료 갹출금의 부과나 징수 역시 강제성을 띤다.
이와 같은 강제성 때문에 건강 보험료의 부과나 징수에서는 더더욱 소득에 따른 형평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정확한 소득 파악 및 징수의 문제로 되돌아간다. 곧, 건강보험의 재정을 통합하든 분리하든, 무엇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소득 파악의 문제인 것이다. 곧, 건강보험 재정 통합의 문제는 우선 소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후, 건강보험의 "재분배적 성격"에 관해 이견을 좁혀야 한다고 본다. 만약 재분배적 성격을 강조한다면 건강보험 재정은 통합되어야 할 것이고, 만약 재분배적 성격을 부인한다면 건강보헌 재정의 분리, 나아가서는 정부가 시행하는 건강보험이 아니라 사보험에 의지하는 의료 체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논의 진행 과정으로 볼 때, 건강보험 재정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건강보험의 재분배적 성격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소득 파악과 징수만 이루어진다면, 건강보험 재정 통합은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건보 재정 통합에 관한 그 많은 논의 가운데에서 아직까지도 "소득 파악 방법"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이루어진 논의는 거의 없다.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률이 30%에도 못미치고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에서 어떻게 소득을 파악하고 있는지 조차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보험 재정 통합의 문제보다 어떻게 하면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할 것인가?"의 문제에 관하여 중지(衆智)를 모으고, 연구하고, 방법을 개발해 내고, 그리고, 그러한 방법들을 검토하고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난 후, 건강보험 재정의 운용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 위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합의 목적을 재확인하자. 경제적인 능력에 부합하는 보험료를 부과하고 필요에 따라 사용하게 함으로써 국민연대를 기하고, 부자 조합이 가난한 조합을 도와 농어민의 보험료를 낮추고 농어민조합이 국고지원 없이 재정자립을 가능하게 하며 관리의 효율을 통해 관리비를 획기적으로 줄이자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정부와 정치권은 재정통합 1년 6개월 유예로 번 시간을 현재의 통합추진방식이 이런 목적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경제적 능력에 부합하는 보험료부과방법을 단기간에 개발하는 것이 가능한가?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률 제고가 단기간에 가능한가? 아마 불가능하다면 대안이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굳이 전국민을 단일 관리코자 한다면 재원조달방법을 바꿀 필요는 없는가?
셋째, 이미 지역주민,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보험료의 일부가 국고에서 지원되고 있고 담배판매에서 일부를 지원하고 있는 만큼, 건강보장세를 추가하는 등의 재원조달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진료비 심사기구만 필요하기 때문에 관리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만일 이런 방식의 재원조달이 어렵다면 두 집단을 분리시켜 2원관리체제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재정분리 시에도 과거의 전례에 따라 노인의료비는 공동으로 조달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준비금 적립금의 고갈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법적 적립금은 6개월분의 보험 급여비인데 통합과 의약분업 과정에서 모두 소진되었다. 정책실패가 낳은 결과임으로 이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할 것이다. 일원화이건 이원화이건 모두 통합체계이므로 선진국이 제안하고 있는 분권화와 경쟁원리를 통합체계에 적절하게 접목시킬 수 있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통해 국민 대다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이를 효율적으로 시행할 때 정책실패의 아픈 과거를 치유할 수 있음을 정부와 정치권, 노동자와 경영자모도가 유념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번 실패의 사례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만 새로운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집필: 송근원 보건의료정책위원, 경성대학교 교수/복지정책학)
출처- 비전@한국홈페이지 정책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