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 중이던 김대중 대통령은 새로운 한-일관계를 선언한다.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전과는 다른 한-일관계를 천명했다. 그로부터 비롯된 행동계획중 하나가 일본문화 개방이었다. 개방계획 발표가 있은 후 한국 문화계는 열띤 찬반 논의에 휩싸였다. 해묵은 사안이었던 탓에 찬반 논의는 감정적인 면을 쉽게 드러냈으며, 서로간 의견차를 줄이지 못하는 등 극심한 분열의 조짐마저 보였다.
예정대로 단계적 개방이 실시되자 찬반 논의는 손익을 따지는 실리 차원의 논의로 그 모양새를 바꾸어 갔다. 개방의 속도와 수위 조절 등을 논의하는 모습으로 옮겨 간 것이다. 국내 문화산업 지원책 등이 심도있게 논의되었다. 감정적인 면은 많이 수그러들었고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성숙한 태도가 형성되어 갔다. 그러던 중 일본 교과서, 신사참배 문제 등이 불거진다. 2001년 7월 정부는 일본문화 추가개방 중단을 선언한다. 논의가 차분하게 이뤄진데다 정부의 추가개방 중단 발표가 더해지자 일본문화 개방 논의는 한동안 조용한 의제가 되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둔 5월30일 김 대통령은 조용했던 그 의제를 다시 꺼냈다. 김 대통령은 일본 문화계 인사들을 면담한 자리에서 '교과서, 신사참배 문제 등 7개항이 마무리되면 이것들과 병행해서 추가적인 문화개방을 검토할 것'이란 발언을 했다. 방송분야 등에 걸려 있는 제한을 풀어 완전개방 단계에 이르게 됨을 의미하는 이 발언에 대해 언론과 문화계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예전에 보여 주었던 반응에 비하면 놀랄 정도의 차분함을 연출했다.
차분함의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문화개방에 대한 자신감 형성과 그에 맞는 문화적 상호주의 입장의 형성 탓일 것이다. 지난 몇년동안 '한류'라는 전대미문의 문화 진출을 경험하면서 문화개방에 대해 사회 전반이 전에 없는 전향적이고 성숙한 태도를 갖게 되었다. 문화적 진출을 꾀하는 처지에서 문화개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문화적 성장을 꾀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갖춘 것이다.
일본문화 개방을 넘어서 추가개방 발언에 대한 차분한 반응, 성숙한 자세가 반가우면서도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의 뜨거웠던 찬반론을 그리워하거나 선 보호, 후 개방이라는 수세적 자세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일본문화 개방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문화개방, 문화교류를 토론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급격한 세계화시대를 살면서 이웃의 한 나라만을 염두에 두던 차원에서 벗어난 전혀 새로운 문화 교류의 장을 열어갈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선 일본 외에 중국 대만 동남아를 포괄하는 문화교류를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을 통해 새로운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방도를 찾고 추진에 앞장서야 한다. 새로운 문화권 형성은 상호 이해와 공동운명체 인식 증대를 목표로 하는 만큼 경제적 이익 추구에 방점을 찍는 문화교류는 신중히 대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WTO 체제에 기반한 북미와 유럽의 문화상품 진출에 대한 지역적 방어전략 수립 등도 고민해야 한다. 이 같은 사안들은 이제 일본문화 개방보다 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시급한 문화적 의제들인 셈이다. 이제 좀더 넓은 지평으로 문화교류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틀어야 한다.
日 문화개방에 부쳐
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 중이던 김대중 대통령은 새로운 한-일관계를 선언한다.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전과는 다른 한-일관계를 천명했다. 그로부터 비롯된 행동계획중 하나가 일본문화 개방이었다. 개방계획 발표가 있은 후 한국 문화계는 열띤 찬반 논의에 휩싸였다. 해묵은 사안이었던 탓에 찬반 논의는 감정적인 면을 쉽게 드러냈으며, 서로간 의견차를 줄이지 못하는 등 극심한 분열의 조짐마저 보였다.
예정대로 단계적 개방이 실시되자 찬반 논의는 손익을 따지는 실리 차원의 논의로 그 모양새를 바꾸어 갔다. 개방의 속도와 수위 조절 등을 논의하는 모습으로 옮겨 간 것이다. 국내 문화산업 지원책 등이 심도있게 논의되었다. 감정적인 면은 많이 수그러들었고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성숙한 태도가 형성되어 갔다. 그러던 중 일본 교과서, 신사참배 문제 등이 불거진다. 2001년 7월 정부는 일본문화 추가개방 중단을 선언한다. 논의가 차분하게 이뤄진데다 정부의 추가개방 중단 발표가 더해지자 일본문화 개방 논의는 한동안 조용한 의제가 되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둔 5월30일 김 대통령은 조용했던 그 의제를 다시 꺼냈다. 김 대통령은 일본 문화계 인사들을 면담한 자리에서 '교과서, 신사참배 문제 등 7개항이 마무리되면 이것들과 병행해서 추가적인 문화개방을 검토할 것'이란 발언을 했다. 방송분야 등에 걸려 있는 제한을 풀어 완전개방 단계에 이르게 됨을 의미하는 이 발언에 대해 언론과 문화계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예전에 보여 주었던 반응에 비하면 놀랄 정도의 차분함을 연출했다.
차분함의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문화개방에 대한 자신감 형성과 그에 맞는 문화적 상호주의 입장의 형성 탓일 것이다. 지난 몇년동안 '한류'라는 전대미문의 문화 진출을 경험하면서 문화개방에 대해 사회 전반이 전에 없는 전향적이고 성숙한 태도를 갖게 되었다. 문화적 진출을 꾀하는 처지에서 문화개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문화적 성장을 꾀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갖춘 것이다.
일본문화 개방을 넘어서 추가개방 발언에 대한 차분한 반응, 성숙한 자세가 반가우면서도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의 뜨거웠던 찬반론을 그리워하거나 선 보호, 후 개방이라는 수세적 자세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일본문화 개방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문화개방, 문화교류를 토론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급격한 세계화시대를 살면서 이웃의 한 나라만을 염두에 두던 차원에서 벗어난 전혀 새로운 문화 교류의 장을 열어갈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선 일본 외에 중국 대만 동남아를 포괄하는 문화교류를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을 통해 새로운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방도를 찾고 추진에 앞장서야 한다. 새로운 문화권 형성은 상호 이해와 공동운명체 인식 증대를 목표로 하는 만큼 경제적 이익 추구에 방점을 찍는 문화교류는 신중히 대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WTO 체제에 기반한 북미와 유럽의 문화상품 진출에 대한 지역적 방어전략 수립 등도 고민해야 한다. 이 같은 사안들은 이제 일본문화 개방보다 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시급한 문화적 의제들인 셈이다. 이제 좀더 넓은 지평으로 문화교류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틀어야 한다.
元容鎭 (서강대교수.신문방송학)
출처 - 세계일보 2002.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