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초 한 언론사가 국가예산의 1%(약 1조 6백억원)를 대북지원과 남북협력사업에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나섰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대북정책 구조하에서는 그러한 규모의 대북지원은 곤란하며, 더욱이 무원칙하게 운용될 경우 남북관계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1조원 지원 구상은 결국에 남북 당국간 합의라는 형식으로 포장된 '대북 퍼주기'의 지속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계속되는 퍼주기는 북한체제의 강화와 잘못된 대남자세 형성에 기여할 뿐,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이바지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간 우리가 제공한 수많은 선의의 대북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남북간에 약속이 된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하거나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남북한이 서로 만족을 얻고 대칭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틀을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남북한이 합의한 사항은 반드시 합의된 일자에 합의된 대로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또 우리측 합의사항 이행과 북측 합의사항의 이행이 상호 연계되어야 한다. 대북지원과 남북협력과 같은 정책수단은 외형적인 관계 개선이 아니라 마땅히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6.15 남북공동선언 채택 이래 우리측은 합의사항을 구체적으로 이행했는 데 반해, 북한측은 그들이 먼저 박차고 나간 회담 석상에 다시 돌아오거나 또는 지키지도 않을 다수의 합의사항을 생산하는 것으로 대응해 왔다. 우리측은 즉각 현찰을 주었던 데 반해, 북한측은 약속어음을 발급하고 얼마가지 않아 부도를 내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비대칭적 구조와 비정상적 관계 설정은 아무리 남북한 특수관계를 이유로 댄다 한들 정당화되기 어렵다. 말하자면 북한측이 회담에 나오거나 합의문건을 생산하는 것과 우리측의 실질적인 합의사항 이행이 대가관계로서 교환되어서는 안된다는 예기이다.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 새로운 합의문건의 생산에 만족하지 말고 그것보다는 기 합의사항의 구체적인 이행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이와 관련, 정부는 남북관계를 '신축적 상호주의'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북한간에 무엇과 무엇이 신축적으로 교환되었는지 알 수 없었던 적이 많았다. 경제와 평화가 포괄적으로 교환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평화는 어디까지나 강력한 한·미 안보동맹과 우리의 '평화지키기'(peace-keeping) 노력에 의해 보장된 것이지 북한이 대북지원과 남북협력에 대한 대가성으로 우리 측에게 준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가 호혜적인 관계, 서로 만족하는 관계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신축적 상호주의'만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전략적 상호주의'를 가미해야 한다. 그런 방안의 하나를 생각해 보자. 매년 초 남북한 당국자들이 만나 각기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하고, 당해 연도에 실시할 사업과 구체적인 합의사항 이행일자를 정한다. 합의이행 과정에서 우리측이 먼저 합의사항을 실천하면, 그에 이어 북한측이 합의한 사항을 이행토록 하는 '맞물림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만일 북한측이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우리측은 합의사항 이행을 중단, 더 이상의 실리제공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써 북한측의 태도변화를 유도한다. 이 같은 프로세스를 되풀이하는 가운데 합의사항은 해를 넘기지 않고 당해 연도 내에 반드시 이행되도록 하고, 연말에 결산을 하도록 한다.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목표로 장기적 안목에서 이와 같은 '전략적 포용정책'을 추진한다면,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물론 북한측의 호응이 없으면 이 같은 아이디어도 역시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에서 우리 정부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금년 말 대선 이후 새롭게 출범할 정부는 과거와 같은 대북 저자세로 '통일치적 쌓기'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새 정부가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협력구조 정착을 원한다면, 위에서 제시한 '전략적 상호주의' 구상을 적극 검토하여 정책화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남북협력과 대북지원 목적의 예산 1% 내지 1조원은 지극히 자의적으로 결정된 감이 있다. 남북관계가 서로 만족을 얻는 호혜적인 관계, 공동번영하고 상생하는 관계로 정립되기만 한다면, 그 때 가서는 1조원의 대북지원과 남북협력은 오히려 부족한 규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1조원은 너무 많은 액수이며, 국민 대다수의 정서도 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이 너무 앞서 가는 것은 바람직한 대북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지금은 지난 4년여간의 햇볕정책이 남긴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기초 위에서 대북정책의 기본틀과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때이지, 1조원 규모의 협력과 지원발상을 성급하게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하겠다.
퍼주기식 대북정책은 이제 그만
금년 초 한 언론사가 국가예산의 1%(약 1조 6백억원)를 대북지원과 남북협력사업에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나섰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대북정책 구조하에서는 그러한 규모의 대북지원은 곤란하며, 더욱이 무원칙하게 운용될 경우 남북관계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1조원 지원 구상은 결국에 남북 당국간 합의라는 형식으로 포장된 '대북 퍼주기'의 지속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계속되는 퍼주기는 북한체제의 강화와 잘못된 대남자세 형성에 기여할 뿐,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이바지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간 우리가 제공한 수많은 선의의 대북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남북간에 약속이 된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하거나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남북한이 서로 만족을 얻고 대칭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틀을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남북한이 합의한 사항은 반드시 합의된 일자에 합의된 대로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또 우리측 합의사항 이행과 북측 합의사항의 이행이 상호 연계되어야 한다. 대북지원과 남북협력과 같은 정책수단은 외형적인 관계 개선이 아니라 마땅히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6.15 남북공동선언 채택 이래 우리측은 합의사항을 구체적으로 이행했는 데 반해, 북한측은 그들이 먼저 박차고 나간 회담 석상에 다시 돌아오거나 또는 지키지도 않을 다수의 합의사항을 생산하는 것으로 대응해 왔다. 우리측은 즉각 현찰을 주었던 데 반해, 북한측은 약속어음을 발급하고 얼마가지 않아 부도를 내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비대칭적 구조와 비정상적 관계 설정은 아무리 남북한 특수관계를 이유로 댄다 한들 정당화되기 어렵다. 말하자면 북한측이 회담에 나오거나 합의문건을 생산하는 것과 우리측의 실질적인 합의사항 이행이 대가관계로서 교환되어서는 안된다는 예기이다.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 새로운 합의문건의 생산에 만족하지 말고 그것보다는 기 합의사항의 구체적인 이행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이와 관련, 정부는 남북관계를 '신축적 상호주의'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북한간에 무엇과 무엇이 신축적으로 교환되었는지 알 수 없었던 적이 많았다. 경제와 평화가 포괄적으로 교환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평화는 어디까지나 강력한 한·미 안보동맹과 우리의 '평화지키기'(peace-keeping) 노력에 의해 보장된 것이지 북한이 대북지원과 남북협력에 대한 대가성으로 우리 측에게 준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가 호혜적인 관계, 서로 만족하는 관계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신축적 상호주의'만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전략적 상호주의'를 가미해야 한다. 그런 방안의 하나를 생각해 보자. 매년 초 남북한 당국자들이 만나 각기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하고, 당해 연도에 실시할 사업과 구체적인 합의사항 이행일자를 정한다. 합의이행 과정에서 우리측이 먼저 합의사항을 실천하면, 그에 이어 북한측이 합의한 사항을 이행토록 하는 '맞물림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만일 북한측이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우리측은 합의사항 이행을 중단, 더 이상의 실리제공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써 북한측의 태도변화를 유도한다. 이 같은 프로세스를 되풀이하는 가운데 합의사항은 해를 넘기지 않고 당해 연도 내에 반드시 이행되도록 하고, 연말에 결산을 하도록 한다.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목표로 장기적 안목에서 이와 같은 '전략적 포용정책'을 추진한다면,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물론 북한측의 호응이 없으면 이 같은 아이디어도 역시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에서 우리 정부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금년 말 대선 이후 새롭게 출범할 정부는 과거와 같은 대북 저자세로 '통일치적 쌓기'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새 정부가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협력구조 정착을 원한다면, 위에서 제시한 '전략적 상호주의' 구상을 적극 검토하여 정책화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남북협력과 대북지원 목적의 예산 1% 내지 1조원은 지극히 자의적으로 결정된 감이 있다. 남북관계가 서로 만족을 얻는 호혜적인 관계, 공동번영하고 상생하는 관계로 정립되기만 한다면, 그 때 가서는 1조원의 대북지원과 남북협력은 오히려 부족한 규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 1조원은 너무 많은 액수이며, 국민 대다수의 정서도 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이 너무 앞서 가는 것은 바람직한 대북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지금은 지난 4년여간의 햇볕정책이 남긴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기초 위에서 대북정책의 기본틀과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때이지, 1조원 규모의 협력과 지원발상을 성급하게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하겠다.
제성호 (비전@한국 통일정책위원장/중앙대 법대 교수)
출처 - 비전@한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