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국가채무, 대응책을 마련하자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여야간 열띤 논쟁의 대상이었던 국가채무의 규모문제는 1년이 지난 현 시점에도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IMF 기준이 직접채무만 국가채무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2000년 말 현재 우리의 국가채무는 118조 7천억 원이고, 이는 외국에 비해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야당은 직접채무에 보증채무, 잠재적 채무, 공기업채무까지 포함시켜야 하며, 이 경우 국가채무는 1,000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으로 인해 국가채무의 심각성을 국민들이 인식하게 된 점은 인정한다.

문제는 119조원이냐, 1000조냐 하는 채무액수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즉, 채무의 규모를 따지기보다 국민부담으로 돌아올 채무항목들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IMF 기준도 필요 없고, 외국과 비교해서 규모가 크니 작으니 하는 잣대도 필요가 없다. 이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여 국가채무로 거론되는 채무들을 하나씩 집어 보자.

우선 약 119조에 이르는 직접채무는 중앙정부채무와 지방정부채무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전액 국민부담이 된다. 직접채무의 원금을 갚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재정흑자 기조를 상당기간 유지해야 하는데, 이것은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보증채무는 2000년 말 기준으로 74.5조원 수준인데, 이 중 부실채권정리기금 채권과 예금보험기금 채권이 68.4조원을 차지한다. 여기에는 구조조정에 투입된 공적자금 135조원 중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구조조정이 성과를 거두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면 국민부담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2001년 3월 현재 회수된 공적자금은 32.8조원에 불과하며, 앞으로의 회수전망도 극히 불투명하다. 보증채무가 IMF 기준에는 제외되어 있다 하더라도 회수되지 않으면 국민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잠재적 채무는 암묵적 연금채무(implicit pension debt)를 의미하는데, 공적연금의 재정구조가 취약하면 장차 국민부담이 될 수 있는 채무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재정상태는 외형상 건전해 보이지만, 본격적으로 노령연금 지급이 시작될 경우 대규모 적자 발생은 필연적이다. 더구나 공무원 연금과 군인연금은 이미 재정고갈로 국민부담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 적자폭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부는 연금의 지급 준비금 부족으로 인한 잠재 부채를 국가채무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처하지도 않고 있다.

공기업의 채무 또한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정부투자기관의 경우 대부분 재무구조가 상당히 열악하다. 예컨대, 도로공사의 경우 도로건설사업이 대표적인 SOC사업인데 사업비의 50%를 도로공사가 자체 조달하도록 함으로써 도로공사의 재무구조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이는 언젠가는 정부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부투자기관이 발행하는 채권의 경우도 정부가 보증하지는 않지만, 인수하는 기관이나 개인들은 정부가 보증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채의 경우는 실제로 정부가 지급 보증한 것도 있다.

국가채무의 내용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시급히 그 규모를 줄이는 방안을 심각히 모색해야 한다. 줄이지 못한다면 국가 재정여건이 더욱 악화되어 경제위기, 나아가 국가위기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멕시코와 같이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불행을 겪을 수도 있다. 국민부담을 최소화하는 국가채무관리와 재정건전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노력이 시급히 필요하다.

첫째, 재정운용의 '절제·투명·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정규율을 확립하여 절제 있고 계획성 있는 재정운용을 유지하고, 정보공개 및 절차의 투명성을 제고하며, 재정적자 및 국가채무 감축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중기재정계획을 충실하게 하고, 재정건전화 특별조치법을 조속히 정기국회에서 제정해야 한다. 또한 재정운용을 경제정책과 조화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둘째, 재정운용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선, 총선, 지자체 선거의 주기를 적절히 조절하여 통합함으로써 선거회수를 줄여야 한다. 아울러 각종 정책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정책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책입안 및 정책결정과정에 관여한 정치인과 공무원의 명단을 법안에 포함시키는 정책실명제는 정치적 왜곡을 차단할 수 있는 한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셋째, 공적자금회수대책을 수립하고 공적자금관리체계를 확고히 해야 한다. 정부 내에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두고 있긴 하지만, 공적자금의 회수대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한 감시체계를 확립하고, 이를 통해 최대한의 자구노력을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한다. 특히 현정부는 남은 임기동안 공적자금의 효과적인 회수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넷째, 하루 빨리 연금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노령화 속도가 OECD국가 중 가장 빠르다. 따라서 연금제도가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되어 있다. 이를 바로잡는 연금개혁이 늦어질수록 암묵적 연금채무는 더욱 늘어날 것이므로,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연금구조를 조속히 개혁해야 한다.

다섯째,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산하 모든 공기업의 재무구조를 파악하고 부채축소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공익성이 크지 않은 공기업의 경우 민영화 혹은 민간 자본유치 등의 방안을 모색하여 미래에 국민부담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내년에는 지자체선거와 대선을 치러야 한다. 선거 때마다 재정정책의 일관성이 깨지거나 굴절되는 악순환을 이번만큼은 사전에 막아야 한다. 외환위기로 인한 재정여건이 악화된 현 시점에서 정치적 왜곡을 차단하는 근본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도약을 이룬다는 국가발전목표의 달성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이미 밝혀진 심각한 국가채무의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내년 선거에서 또 다시 국가채무문제가 선거의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면 더 이상 나라의 희망은 없을 것이다. 정부여당과 정치권은 국가위기를 극복해야한다는 구국의 일념으로 9월 정기국회에서부터 그 해결의 장치를 마련하고 그 실천에 총력을 기울이기를 촉구한다.

(대표집필: 안종범 성균관대학교 교수/경제학)

출처 - 비전@한국홈페이지 정책대안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