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인사 청문회 감상법
	2006-02-09
장관 인사 청문회 감상법 정부의 요인들은 국민의 권한과 권리를 위임받아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구성원들의 욕망을 최대한 만족시킬 책임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국민이 믿을 수 있는 도덕성은 물론 국가경영을 위한 탁월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과 지혜를 가져야만 한다. 절대다수 국민의 성실한 대표자가 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장관과 같은 정부 고위 관리가 된다면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어 커다란 혼란을 초래하는 불행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제17대 국회가 국무위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여 헌정사상 최초로 실시한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TV를 통해 생중계된 이번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소감은 한마디로 한 편의 질 낮은 ‘코미디’를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이번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한다는 제도 자체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닭싸움’과 같은 여야 간 정쟁의 장(場)으로 전락했다.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의 시선에서 후보자들을 검증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당의 입장을 철저히 대변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인사청문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만 급급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야 의원의 청문회 결과가 ‘여당은 찬성, 야당은 반대’로 나온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다음으로 허탈한 것은, 참여정부 출범 이래 단 하루도 끊이지 않고 있는 ‘코드인사’의 또 다른 모습을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도 어김없이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인사청문회에 나선 후보자 가운데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적임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는 한번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경륜 부족과 편향된 이념적 성향, 그리고 학자적 도덕성 결함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이종석 내정자가 국가 정체성을 지켜며 균형된 통일정책을 발전적으로 끌어나갈 수 있을까. 국민연금 보험료를 체납하고 여성 비하 발언을 하면서도 저돌적인 개혁주의자로 품위를 잃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던 유시민 후보자가 짙은 화장으로 전에 없이 몸을 낮췄다고 갑자기 보건복지부장관직의 적임자가 될 수는 없다. 대선 당시의 스캔들로 이제 막 감옥에서 나온 이상수 내정자가 청문회에 나선 것은 국민으로부터 보은 인사라는 비웃음마저 사고 있다. 전직 대학총장 출신 김우식 내정자의 경우도 부적절한 후보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여당 위원들은 하나같이 후보자들의 결함을 ‘설득력 없는 논리’로 옹호하거나 호도하기 위해 발언 시간의 대부분을 무의미하게 허비해 버렸다. 결과적으로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 역시 허탈한 나머지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의 책임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 왜 노 대통령은 코드인사를 넘어 야당은 물론 국민 누구도 흠 잡을 수 없는 장관 후보자를 물색해서 국민 앞에 보여 주지 못하는가. 왜 대통령은 유능한 인재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잡티투성이’ 후보자들만을 선택하는가. 혹시 대통령은 나라의 복지정책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가 대권주자를 만들기 위한 징검다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사청문회가 우리 정치문화에 커다란 전기(轉機)를 마련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임명권자는 후보자의 검증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를 객관적이고 겸허하게 분석하여 국민이 원하는 인사를 하기 바란다. 인사청문회를 단순히 하나의 요식행위로만 치부한다면, 그것은 시간과 정력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도덕성을 잃게 될 것이다. 또한, 청문회에 나선 인사들도 청문회를 통해 나타난 국민의 평가에 따라 스스로 물러날 수도 있는 용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토머스 제퍼슨은 “정부란 총체적으로 정직할 수 있는 기술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국민이 정부에 복종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의 뜻을 정직하게 반영시켜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어느 시대에도 유용하다. 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6. 2. 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