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法 개정안은 ‘기업판 사학법’
	2006-02-03
商法 개정안은 ‘기업판 사학법’ 참여정부 출범 이후부터 줄곧 태풍의 눈으로 여겨졌던 4대 개혁입법 노력이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일단락된 듯하다. 실로 우리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정도로 논란이 많았던 입법들이었다. 그러나 신문법과 사학법 개정은 아직도 시장경제 질서에 반한다는 위헌성 시비가 진행중이어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문제는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또 다른 입법을 통해 발생할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5월 법무부는 상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한 후 대대적인 상법 중 ‘회사편’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개정 추진은 우리의 상법이 경제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그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 역시 시장경제 질서에 반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법무부 초안에 따르면 대기업의 경우 현행 이사회는 감독기능만 수행하고, 업무집행권은 이사회가 선임한 집행임원들에게 위임하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법을 통해 회사의 소유와 경영을 강제로 분리시키려는 숨은 의도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현행 상법상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는 업무집행권과 업무감독권을 모두 갖고 있는 회사의 중추기관이다. 그리고 거대자본을 투자한 대주주는 이사회를 통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법률로 이사들의 업무집행권을 배제한다면 사실상 대주주의 경영권 행사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증권거래법의 적용을 받는 자산 2조원 이상 되는 대기업의 경우 사외이사가 과반수로 구성되도록 강제하고 있어 더욱 심각한 경영권 공황 상태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회사에 거대한 자본을 투자한 사내이사는 단지 사외이사와 같은 비율로 집행임원의 과반수를 선임할 권한만 갖게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사회의 의장이 대표집행임원(CEO)의 지위를 겸하도록 하고, 사내이사가 집행임원을 겸직하도록 한다면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상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개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감독기관의 대표가 피감독기관의 대표직을 겸하게 되고, 감독자 자신이 곧 피감독자가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법무부의 초안대로 이사회의 업무집행권이 배제될 가능성이 크고 현재의 경영진은 집행임원의 과반수만 선임할 권한을 갖게 될 가능성이 짙다. 이는 국가 경제적으로 볼 때 자본시장의 퇴조를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영미식의 주주 자본주의에서 유럽식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바뀌는 실질적 효과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겠으나, 이는 현실을 외면한 무책임한 주장이다. 이는 영미의 자본시장은 급속도로 발전하는 반면, 유럽의 자본시장은 계속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상법이란 경제활동의 주체인 회사를 규율하는 기본법이다. 따라서 해당 국가가 어떠한 상법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국가 경쟁력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이 회사법을 친시장적으로 개정한 이후, 10년간 지속됐던 버블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독일이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 1998년 주식회사법을 개정하여 30년 넘게 유지해오던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 규정을 철폐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자본시장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마당에, 이와는 정반대로 추진되고 있는 우리의 상법 개정 논의는 공감하기 어렵다. 이번 상법 개정은 분명 우리 경제 발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반면, 암초가 될 수도 있다. 부디, 친시장적이고 세계적인 추세에 부합하는 상법 개정 작업이 되기를 기대한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법학, 기업소송연구회 회장) 출처 - 문화일보 2006. 2. 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