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의 질적 변화 필요하다
	2006-02-01
한미동맹의 질적 변화 필요하다 연초에 열릴 것으로 예상됐던 2단계 5차 6자회담이 북한에 대한 미국의 금융제재 등으로 표류하고 있다. 9·19 공동성명 발표 다음날부터 제기된 북한의 위조지폐 유통 의혹과 이에 따른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는 중국, 한국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현안으로 부각됐다. 북한의 위조지폐 유통이 중국 관할지역인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을 통해 이뤄졌다는 의혹 때문에 중국도 위폐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편 한국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와 관련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23일 위폐 문제 협의 과정에서 미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이 “한국이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주범들과 그들을 돕는 지원망을 재정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힘써 달라”고 요청했다고 주한 미 대사관 측이 밝힌 것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마찰음을 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한국은 “북한 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고 때로는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 내 일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참여정부는 북핵 문제로 불거진 위기정세와 관련하여 한반도에서의 전쟁 반대, 대북 제재나 봉쇄 불가, 북한체제 붕괴 불원 등 ‘대북 3불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을 무시하고 체제 붕괴를 겨냥한 대북 압박을 지속할 경우 한미 간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미국의 협조를 요구하는 대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부분 협력, 스크린쿼터 축소, 소고기수입 재개 등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고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반세기 이상 유지돼온 한미 동맹이 ‘동맹피로 현상’을 보임에 따라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 재배치와 함께 동맹관계의 질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제 한미 관계도 탈냉전과 남북 화해라는 시대 변화에 맞게 상호 이익을 찾아 새로운 관계 설정을 구체화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군사안보 중심의 동맹관계에서 사회문화 전반을 포괄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상호 이익의 공통점을 찾아 주고받는 질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일 양국이 탈냉전에 맞춰 동맹의 외연을 확대하고 공통 가치를 강조하는 ‘신안보선언’을 통해 존립의 공통분모를 찾았듯이, 한미 동맹도 시대 변화에 맞게 존립의 공통분모를 찾아 나가고 있다. 탈냉전과 함께 한국은 러시아·중국과 수교했고, 이들 국가와의 관계가 밀접해지고 있다. 그리고 남북 화해협력 시대를 열어나가고 있다. ‘전략성 모호성’ 개념에 따라 우리 정부가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과 PSI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은 탈냉전 이후 변화된 동북아 신질서의 역학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 정부가 PSI 훈련에 ‘참관’하는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지만, PSI는 MD와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 위협론을 내세워 미국과 일본이 추진하는 MD는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지만, PSI는 WMD 확산과 마약 거래 등 비정상적인 밀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PSI를 반대하지 않고 있다. 상호 의존성의 시대에 ‘불량국가’에 공동 대처하자는 노력이 PSI이다. 우리 정부의 PSI 훈련 참관 결정은 ‘불량국가 길들이기’에는 동참할 수 있지만, 북한 체제 붕괴를 전제로 한 대북 압박에는 동참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PSI가 구체화될 경우 지구상에서 불량국가가 존재할 공간은 점차 축소될 것이다. 북한도 정상 국가로 변신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국제구조의 본질을 하루바삐 깨달아야 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출처 - 세계일보 2006. 2. 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