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국정원 도청수사의 의의
	2005-12-16
안기부·국정원 도청수사의 의의 한동안 판도라의 상자로 불렸던 옛 안기부와 국정원의 이른바 ‘X파일’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14일 발표됐다. ‘X파일’을 둘러싸고 극심했던 논란도 어느 정도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비판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뒤늦게라도 과거 정부들의 불법도청 전말이 밝혀져서 다행이라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논란이 나오는 것은 검찰이 도청행위자와 내용을 보도한 언론인은 기소 처분한 반면, 도청 테이프에 등장한 인물들은 불기소 처분했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은 이 도청사건에서 헌법과 통신비밀보호법을 엄격히 적용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통신비밀 보호에 더 큰 비중을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선진 각국의 경우 불법적으로 취득한 증거를 가지고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을 정립함으로써 국민의 사생활과 개인의 인권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이번에 검찰이 정치적 판단보다는 법리에 치중해 법을 적용했다는 점도 이런 추세에 비추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X파일 사건 초기부터 국가기관이 자행한 불법도청이 정당화되는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처음에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정치권이 쥐는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압력 속에서 이뤄진 검찰 수사는 검찰이 법치주의의 한 보루임을 재확인시켜준 시금석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무엇이 정(正)인지 판단이 안 될 정도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늘 정치권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번 사건만 보더라도, 정치권은 YS 시절의 도청과 DJ 시절의 도청을 두고 형평성 논란을 벌여왔다. 또, 삼성을 두고는 정치자금 수혜 의혹자와 비수혜자 간의 내용 수사 공방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재차 불법도청의 위법성과 위헌성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는 “법적 근거 없이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16조에서는 위반시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18조에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공소시효 연장을 언급하면서 YS 시절 안기부의 도청에 대해서도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며 형평성 논란을 촉발시켰다. 일부에서는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온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274개 도청테이프의 내용을 철저히 수사하여 대화 내용에 대한 위법성을 판단, 응징해야 한다는 여론을 정치권이 주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결국 헌법 제18조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불러왔고, 현재까지 진행된 끊임없는 혼란의 주범이었다. 물론, 법리해석은 어느 정도 자율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법 적용은 자율성보다는 엄격한 법치주의 원칙 아래서 이뤄져야 한다. 인권 침해의 우려가 높은 형사사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 점에서 도청 관련 검찰의 수사 결과는 법치주의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검찰의 X파일 관련 수사 결과를 통해 불법도청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리고 검찰이 개인의 인권과 사생활을 보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평가할 만하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법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12. 1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