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위에 있는 신문관련법들
	2005-12-06
헌법 위에 있는 신문관련법들 차기 정부에 기대하는 이념 성향이 진보·개혁(46.0%)보다 보수·안정(49.4%)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동안은 현 정부의 개혁정책은 실패했어도 개혁 자체는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개혁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이 크게 늘어난 것을 보여준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가 뜻은 좋은데 능력 부족으로 그 뜻을 잘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목표 자체를 잘못 설정했음을 증언한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언론개혁이고, 신문법의 제정이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부터 언론개혁에 전력을 기울였다. 대통령 자신이 일부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언론개혁의 의지를 보였고, 4대 개혁 입법의 하나로 신문법 제정에 주력했다. 연초 국회를 통과한 신문법(신문등의자유와기능보장에관한법률)과 피해구제법(언론중재및피해구제등에관한법률)은 이러한 의지의 산물이다. 그러나 두 법은 개혁의 목표를 잘못 설정하였을 뿐 아니라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헌법이 허용하는 한계를 넘고 있다. 언론이 개혁의 대상인지도 의문이지만, 이를 인정하더라도 그 목표는 언론의 자유를 신장하는 데 두어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재판소가 적절히 판시했듯이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기본권이며 이를 최대한도로 보장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는 하고 싶은 말을 함으로써 실현하는 것이 원칙이다. 신문사는 보도 내용을 자유로이 편집함으로써, 독자는 자신이 원하는 신문을 자유로이 선택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구현한다. 반대로 원하지 않는 내용을 보도해야 하거나 원하지 않는 신문을 구독해야 한다면 이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 신문법은 이렇게 간명하고 분명한 언론의 자유를 때로는 무시하고, 때로는 왜곡하고 있다. 언론개혁의 명분으로 신문시장의 혼탁상이 거론되지만 신문법의 거의 모든 내용은 이와 관계없다. 신문시장의 정상화는 기존 법을 엄정히 집행함으로써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신문법의 제정 목적은 오히려 신문사로 하여금 원하지 않는 내용을 보도하도록 강제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명분으로 ‘사회적 책임’ 또는 ‘공정성’이라는 개혁적인 용어가 사용되었다. 신문법의 형제법인 피해구제법은 보도 내용이 국가적 이익이나 사회적 이익에 위반된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언론중재위원회에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중재위는 공개적으로 신문사에 시정 권고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결국 ‘개혁’의 목표는 신문의 내용에 간섭하는 것이고, 그 수단으로 동원된 것이 신문법과 피해구제법의 제정인 셈이다. 이는 언론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 물론 언론의 자유라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헌법은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을 모두 보호할 수 있는 방법, 혹은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지 않는 접근을 요구한다. 피해구제법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언론사의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정정 보도하도록 하는 조항이나 판례(判例)로 형성된 기준보다 더 엄격하게 인격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언론사에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는 법률은 엄정하게 시행될 경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사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언론개혁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국민이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문법과 피해구제법의 위헌성은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질 것이다.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교수·법학) 출처 - 조선일보 2005. 12. 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