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위가 할 일, 하지 말아야할 일
	2005-12-01
과거사위가 할 일, 하지 말아야할 일 오늘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두고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100년 전 일까지 새삼 파헤치는 역사 뒤집기를 시도함으로써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심화시키고, 국력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과거사 청산은 불가피하게 퇴행적이기 때문에 사회 통합과 경제 성장과 같은 미래 지향적 국가 과제는 뒤로 밀려나거나 아예 묻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이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된 송기인 신부의 역사 인식이나 이념적 편향을 문제 삼기도 한다. “통일 방해 세력인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남과 북이 먼저 손을 잡아야 한다”는 그의 말에 잘 나타나 있듯이 그의 이념적 지향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현 정권이 추천한 진보 성향의 위원이 절반을 넘어 기존의 사관이나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여야의 첨예한 대립을 극복하고 극적인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기초하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진상조사 범위를 두고 각각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며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이다가 막판에 극적 합의에 이르렀다. 이러한 합의에 의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적인 세력에 의한 테러, 인권 유린, 폭력, 의문사”도 진실 규명의 범위에 포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상생은 고사하고 좌우 이념 대립, 국론 분열 및 정쟁의 격화를 초래할 악법이라는 비난과 과거사법은 정치적 야합이며, 오히려 가해 세력을 비호할 수도 있는 불완전한 법이라는 악평이 뒤따랐다. 과거사위의 활동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라는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실과 화해는 서로 상충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적 진실을 특정 위원회가 규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학문적으로 역사적 진실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는 있지만 무엇이 역사적 진실인지에 대해서 합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제 강점기 직전부터 노태우 대통령 임기 때까지 약 100년의 역사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힘들다. 충분한 시간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역사적 사건일 경우 진실에 대한 합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 사건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살아 있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객관적 거리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회 통합이나 화해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현대사의 굴절 때문에 피해본 사람들, 인권 유린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진상 규명, 명예 회복 내지 피해 보상을 무한정 미래로만 미룰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목적을 순조롭게 달성하기 위해서는 헌정 질서 파괴 행위나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인권침해·조작의혹 사건을 비롯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폭력·학살·의문사의 진상 규명에만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국민적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진상 규명이 아니라 역사 해석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해 과거와 화해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 통합이 목적이라면, 과거와의 화해는 고사하고 국민 분열만을 초래할 것이다. 역사적 진실, 민족 정통성의 확립과 같이 거대한 명분이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어렵다. 원천적으로 합의가 어려운 사항에 대해 합의를 보려고 하면 대립과 갈등, 증오와 분열만을 초래할 뿐이다. 좋으나 싫으나 대한민국 국회의 입법 과정을 거쳐 발족된 기구이니, 현명하고 지혜로운 운영을 통해 역사의 짐을 덜어야 할 것이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철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12. 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