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집단 지배구조 규제의 방향
	2005-11-25
기업집단 지배구조 규제의 방향 필자의 이탈리아 친구가 고속도로에서 과속을 하기에 도로변의 속도제한 표지를 가리키며 “왜 저 130㎞ 속도제한을 지키지 않느냐” 하니까, 그 친구가 “저건 30분에 130㎞”라면서 킬킬거리던 기억이 난다. 이탈리아를 아는 사람들은 이탈리아인들이 자신들의 준법 수준이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사회 전체가 ‘자유분방’한 데 대해 자조적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안다. 범죄조직의 대명사인 마피아를 항상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최근에 이탈리아가 흥미 있는 입법을 했다. 이탈리아는 밀라노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의 36%를 차지하는 20개 기업집단이 순환출자 구조 아래에 있고 25%를 초과하는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의 비중이 65.8%이며, 따라서 경영권의 사적 이익 추구 위험도 높은 나라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기업집단 자체를 법률적 실체로 인정키로 했다. 지배 회사가 피지배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피지배 회사 소수 주주와 채권자가 지배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면서도 기업집단 운영상의 이익이 그 피해를 상쇄하는 경우는 예외로 하기로 했다. 이렇게 기업집단이라는 실체를 인정하는 동시에 내부거래와 지배-피지배 관계에 대한 공시의무는 강화했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 도구가 사전적 규제 장치와 사후적 규제 장치로 나뉜다고 볼 때, 정부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사전적 위험발생 방지 장치를 선호한다. 즉, 재벌의 소유구조 단순화에 역점을 둔다. 출자총액 제한제도와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제도가 있고 정치권에서는 순환출자 규제론까지 나온다. 그러나 로드맵에 따른 정책 집행이 시장에서 아직 실질적인 압력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즉, 그 효율성이 의문이다.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는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느 나라든 큰 기업이 도산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그 사회·경제적 파장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자본시장 중심의 경제체제가 정착돼 가고 있다는 사실과 금융시장의 동조화 현상이 심해진 것과 관련이 있다. 대기업의 실패는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리스크 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윤리 경영 개념이 ‘지속가능한 경영’ 개념을 상위 개념으로 하여 널리 퍼지고 있다. 기업집단은 ‘요주의 관리대상’ 1호인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세계적인 기업집단 규제 동향이 경제학적인 기초를 결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시너지 창출 방식, 내부 자본시장 형성 수단, 인수·합병(M&A) 시장 내부화 수단 등으로서의 기업집단이 가지는 효용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부작용만 부각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기업집단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는 향후 공시의무의 강화와 위법행위에 대한 엄중한 사후규제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공정거래법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내부거래를 공시하도록 한다. 그러나 위반에 대한 제재가 과태료다. 증권거래법상의 공시의무 위반이 대개 형사처벌로 제재되는 것과 균형이 맞지 않다. 반면, 소유구조의 공개는 일종의 고발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시제도의 본질적 요소는 가치 중립성에 있으며 정부가 실체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이 모든 부담을 지게 하는 것이다. 소유구조 공개는 향후 가치 중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후규제 위주로의 제도 전환에는 사법부 역할론이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 학자에 따라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열쇠는 최종적으로 법관들이 쥐고 있고 법관 교육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 시장경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반영하는 판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부실한 계열사에 대한 지원이 경영 판단으로 보호돼야 한다고 하면서 그러한 결정은 경영진의 개인적 이익이 결부된 것은 아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공시제도와 사후규제가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작동하게 되면 정치권도 지금보다 훨씬 마음 편하게 대기업과 기업집단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김화진 (법무법인 율촌 미국변호사) 출처 - 문화일보 2005. 11.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