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사건의 정치화를 우려한다
	2005-11-16
도청사건의 정치화를 우려한다 국가정보원 불법감청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이 구속 수감됐다. 검찰은 최근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삼겠다고 했으나, 이번 사건에서는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전구속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검찰은 전직 국정원장의 구속이라는 큰 사건 앞에서 두 전직 원장의 재직중 공로를 생각하여 구속영장 청구에 상당히 고심했다고 한다. 이제 불법감청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것은 검찰의 수사에 달려 있다. 이번 사건은 국가기관에 의한 무차별적 불법감청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더구나 불법감청 자료로부터 흘러나와 언론에 보도된 불법 대선자금에 관한 내용은 국민에게 충격적인 정·경·언 유착사건이었고, 이 사건은 여전히 수사가 진행중이다. 불법감청사건은 국가기관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라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기관의 권한을 정치적 의도로 남용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사건이며, 그와 연계돼 터져 나온 불법 대선자금 문제는 법치국가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을 한 순간에 불법국가화하는 사건이다. 불법감청사건에 연루된 두 전직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알려지기 시작하자 정치권에서는 영장 청구에 대한 견해를 적나라하게 밝혔다.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수사가 부당하다는 것부터 구속을 취소하라고 직접 요구하는 것이나 영장 청구는 지나친 행위라고 하는 것 등과,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입장과 구속수사는 당연하다는 입장까지 다양하게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정치권의 이런 모습은 국민에게는 사법절차를 통해 법적 해결을 해야 할 문제를 타협을 통한 정치적 해결을 시도하기 위한 것 같아 결코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정치권의 행태는 지난번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행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권의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의 주장이 법치주의에 흠집만 남겼다는 것으로부터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구속사건에서 보여준 정치권의 모습은 적법한 사법절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준사법기관인 검찰권 행사에나 사법기관인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사법절차에 대한 정치권의 과잉반응은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하고 법치질서에 심각한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 불법감청사건은 두 전직 국정원장의 구속으로 검찰 수사의 전환점에 서 있다. 이 사건은 전직 원장들이 본인의 도청 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직책으로부터 나오는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사건의 실체야 법원의 재판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검찰에 따르면 전직 원장들은 불법감청에 대해 보고를 받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주도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권위 정부 시절의 불법감청에 대해 맹렬히 비난하면서 도청 근절 의지를 밝혔던 과거 국민의 정부가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이는 국민의 지지 속에서 평화적인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김대중정부의 도덕성에 커다란 흠집을 남기는 것으로, 우리나라 헌정사에 있어서도 불행한 일이다. 국민에게 불행한 이번 도청사건은 정보기관의 책임자였던 전직 원장들의 구속으로 마무리될지, 아니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사건은 어떤 경우든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도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계속 주시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가는 도청 근절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할 책무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국민으로부터 감시받지 않는 국가권력은 불법화하거나 부패하고, 그 결과 법치질서를 훼손하여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11. 1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