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바로알기' 교재와 이념교육
	2005-11-02
'APEC 바로알기' 교재와 이념교육 전교조 부산지부가 동영상으로 제작한 ‘아·태경제협력체(APEC) 바로알기 수업안’의 별첨 자료인 17분짜리 ‘아펙 기동대’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입에 담기조차 벅찬 욕설로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매도하면서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이데올로기 교육이 국가의 손에서 특정 교육단체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특정 이데올로기의 신봉자가 우리 자식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 것인지를 교육하는 기막힌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그동안 전교조는 시사적인 주제를 소재로 공동수업(계기수업)을 시행해 왔다. 반전평화 공동수업, 4·19공동수업, 5·18공동수업, 최근에는 사립학교법 공동수업을 했다. 전교조가 내세우는 공동수업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사회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과 사회가 부닥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고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적은 제7차 교육과정의 교육목표와도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전교조 부산지부가 제작한 35쪽짜리 수업안 대부분은 APEC이 인류 전체의 생존과 평화를 위협하는 강자의 논리를 편들어 왔다는 주장으로 점철돼 있다. APEC은 이처럼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여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하고,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파괴하며,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수업안은 창의적이고 비판적 사고 없이 반세계화 운동 단체나 ‘아펙 반대 국민행동’의 입장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육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게 된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정치적인 내용을 일방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과연 허용돼야 하는가? 공교육의 현장에서 특정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전교조의 이념을 담은 내용들을 학생들에게 교육해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 문제가 있다면 어떤 근거에서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교육 내용의 적합성을 누가 판단하고, 통제해야 하는가? 전교조 부산지부 정책실장은 교사들이 참고자료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사용 여부도 알아서 정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지만, 교사들에게 교육 내용에 대해 어디까지 자율성을 주어야 할 것인가? 몇 년 전 이라크전쟁에 대해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을 때,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부 교사들이 참전에 반대하는 세미나를 학교에서 열고 학생들을 참여시키려고 했다. 이런 사실을 안 학부모들은 일방적인 세미나가 학교에서 개최되는 것에 반대했다. 마침내 찬반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토론회가 열렸고 학생들이 참여했다. 학부모들이 일방적인 이데올로기 교육에 대한 감시자로 나선 것이다. 이념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 특정 입장을 선호하는 교사의 일방적인 입장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교사의 양식과 교육적 양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 교육현장에서 이것을 기대할 수는 없게 되었다. 특정 이념으로 무장한 교사들이 교단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선택과 교과서 선택, 교사 선택을 학부모 대신 국가가 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교육 내용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 교육 부총리가 편향 시비와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우려하여 각 시·도 교육청에 이 (아펙) 수업 자료를 활용해 수업하지 않도록 지도를 강화할 것을 지시하면서, 전교조에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조해주고 공동수업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으로 책임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정부도 이제 신뢰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국가가 교육에 대한 모든 선택권을 학부모에게 돌려주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학부모가 교육 전반에 대한 감시자로 나서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철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11. 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