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선거 이후 정국을 생각한다
	2005-10-27
10·26 재선거 이후 정국을 생각한다 때 맞춰 내린 비로 만산홍엽(萬山紅葉)이 한층 선명하게 느껴지는 가을이다. 이른 아침부터 어제 끝난 재선거 결과를 두고 시정(市井)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10·26 재선거에도 여지없이 구태는 재연되고 말았다. 재적의원 299명 가운데 겨우 4명을 충원하는 선거에 소속 의원들을 대동한 여야 지도부가 수많은 국정과제가 산적해 있는 정기국회를 박차고 나와 선거지역의 골목길을 누볐다. 이처럼 과열된 선거 분위기에 편승해 각종 흑색선전과 불법·타락 선거 행태가 속출하면서 중앙선거관위에 불법선거운동으로 적발된 건수만 해도 46건이 이르는 구태를 답습하고 말았다. 비록 이번 선거가 이처럼 불량한 선거였기는 하지만 따질 것은 따져봐야 한다. 우선, 4전 전패를 당한 이번에도 이른바 ‘재·보선은 여당에 불리하다’는 통설로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갈 것이냐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묻고 싶다. 재·보선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민심이 여당에 다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해도, 4전 전패라는 결과로는 어느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다. 여당이기 때문에 동원할 수 있었던 그 많은 지역개발 공약도 유권자의 가슴을 떨리게 하지 못했던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 최저점으로 기록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도는 선거시 여당 후보의 홍보물에 정당 표기를 하지 않거나 글자 크기를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유권자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한나라당 역시 여당의 전패에 철저하게 관철된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도를 통해서만 자신들이 거둔 전승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지금까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을 집권 여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정치적으로 이들과 가장 강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중복적으로 표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찌 됐든 10·26 재선거 이후 국정 운영에 대한 우리들의 주문(注文)은 국정의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민심을 최후의 보루로 한 여론정치에 충실하라는 원론적 주문을 정부와 집권당에 새삼스럽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을 현재의 위치에 있게 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던지를 냉정하게 다시 한번 상기해 볼 것을 권고한다. 여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 역시 이번 재선거를 포함한 몇 차례의 재·보선에서 반복적으로 외면했던 국민과 같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곱씹어 보라는 것이다. 집권 이전 여론에 입각한 정치를 주장하면서 민심에 고분고분했던 겸손함이, 혹여 집권 이후에는 국민의 여론에 따르는 것을 인기에 영합하는 것이라고 강변하는 교만과 독선으로 대체되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바로 여기에 정확하게 조준돼 있다. 모름지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권력은, 그것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선거과정을 통해서 성립되며, 또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것이 수행하는 정치행위에 정당성을 부여받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유권자들이 이렇게 성립된 정치권력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전권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극히 상식에 속한다. 바로 이러한 상식이 말하고 있는 것은, 선거를 통해서 출범한 참여정부도 여느 정부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여론에 토대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명설(天命說)과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에 입각했던 전제군주도 백성의 목소리를 그저 우둔한 민중의 속견으로 치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론에 토대를 두어야 할 항목 속에는 지금의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태도도 포함된다. 윤순갑 (경북대 교수·정치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10. 2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