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국제경쟁력
	2005-10-20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국제경쟁력 최근 진행되고 있는 기업 지배구조 재편의 논의 방식에는 다소 걱정스러운 점이 있다. 즉, 최근의 논의과정은 우리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 시스템 합리화를 위한 논의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등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는 가운데 ‘세금을 탈루하며 경영권의 불법 상속을 시도하고,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여 한국 경제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불법적으로 확보하려는 부도덕한 재벌 세력들을 응징’하는 차원에서, 기업 지배구조 재편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기업주들이 경영권을 상속하는 과정이나, 경영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의 불법 행위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대기업주 2세들이 경영권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편법 탈세 등의 문제는 엄격한 과세 및 탈세액 추징·처벌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은 우리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 과정의 합리화 및 궁극적인 국제경쟁력 제고가 그 목적이지, 탈세 방지의 수단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만약 대기업들의 경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있는 유일한 요인이 ‘5% 미만의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대기업 계열사 간 순환출자에 따라 50% 이상의 내부 지분율을 통해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즉,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1997년의 외환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이후 한국의 대기업들이 기술을 혁신하고 경영의 효율성을 제고하여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전념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미국 소버린의 기업사냥 등의 사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이자 또 그 결과인 무원칙적인 자본시장의 개방으로 인해 이제 우리나라 기업의 외국인 평균지분율은 49.61%로, 전 세계에서 핀란드와 헝가리를 제외하면 가장 높다. 더욱이 국내 자원 배분의 공공적 기능을 담당하는 시중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60%를 웃돌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금융시장 개방을 주도했던 미국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10.3%이다. 그리고 미국 금융기관의 경우 외국인 이사를 제한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전 세계 외환거래량의 99.3%가 투기적 거래임을 기억하면 얼마 전에 소버린이 보여준 기업사냥은 예외적 사례가 아니다. 이러한 새로운 경영 환경 변화가 대기업으로 하여금 경영권 방어 및 외국인 주주들의 배당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급급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외국의 공격적 투기자본들이 우리 기업들의 경영 의사결정 시스템을 점점 더 왜곡하고 있다는 새로운 왜곡 요인은 외면한 채 간단하게 순환출자만을 전면 금지하는 접근은 단기적으로 대기업의 경영 의사결정 시스템을 더욱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세금도 물지 않는 경영권 세습에다, 5% 미만의 지분으로 전횡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과거 대기업의 관행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 지배구조 개편 과정이 과거의 무원칙적 시장개방 조치처럼 공격적 외국 투기자본의 배만 불려주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즉, 우선 대기업들이 기술개발 및 경영혁신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공격적 외국 투기자본들의 기업사냥을 억제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이러한 투기자본들에 대한 기업사냥 억제장치 마련과 함께 기업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진다면, 우리 기업의 투명성은 국제경쟁력과 함께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10. 2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