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경영합리화가 먼저다.
	2005-10-10
공영방송, 경영합리화가 먼저다. KBS는 한전과의 위탁계약을 통해 전기 요금에 수신료를 포함하여 가구당 한달에 2500원씩을 징수하고 있다. 그 2500원만으로는 부족한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한편, 텔레비전 수상기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시청이 가능한 PC와 차량에 설치된 액정 모니터에도 수신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KBS는 지난해 638억원의 적자를 보았다. 경기 침체와 경쟁 매체의 등장으로 광고수입이 급감한 결과라 한다. 줄어든 만큼의 광고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서 수신료 인상과 새로운 매체에 대한 수신료 부과를 고려하는 모양이다. 일반 기업의 경우 수입이 줄어들었다면 지출을 줄이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기업들이 알짜 부동산을 매각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을 보아 왔다. 빠르게 변화에 적응한 기업은 살아 남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됐다. 2004년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KBS는 전국에 25개에 달하는 지역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16개 지역국은 자체 프로그램 제작 비율이 평균 1.1%로 조사됐다. 또한, 2003년 기준으로 임직원 수는 무려 5136명으로 나타났다. 작가, 연출보조 등 프로그램 제작스태프의 상당수가 외부 프리랜서인 방송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실제로 KBS에서 일하는 인원은 조사된 수치를 훨씬 웃돌 것이다. 지난해 KBS는 수신료 수입으로 5100억원을 걷었고, KBS2 TV 광고를 통해 6200억원을 벌어들였다. 수신료 인상을 논의하기에 앞서 KBS는 이처럼 방만한 예산 사용과 방송사 운영이 과연 타당한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오늘날 ‘공영방송’이란 말이 마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사용되고 있다. 공영방송사란 국민 모두의 소유인 주파수를 빌려서 사용하기 때문에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송사란 뜻이다. 공영방송이란 말은 방송사 입장에서는 무언가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무거운 짐인 것이다. 이제 공영방송사의 의무를 감독해야 할 때이다. 공영방송사란 방패를 이용하여 경영 부실을 합리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공영방송의 의무는 일차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내용 면에서 볼 때 KBS는 과연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의심이 든다. KBS2 TV의 지나친 상업성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지적했지만 앞으로도 별로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좋은 프로그램이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유용함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오늘날처럼 다양한 집단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전통적 개념의 공익성, 즉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목표를 향해 노력한 흔적만이라도 보고 싶다. 공영방송의 또 다른 의무는 공영적 구조를 가지는 것이다. 공영적 구조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사 조직을 말한다. 국민이 낸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 프로그램의 공영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조직의 공영성이다. 이를 위해 KBS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경영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방만한 운영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추가 수신료 징수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수신료를 더 걷을 생각을 하기에 앞서 어떤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방송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오늘날 공영방송은 마치 ‘공룡방송’이란 말처럼 들린다. 어릴 적 방송사가 3개뿐이던 시절, 아련한 추억과 즐거움을 주었던 방송사들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한 거대한 공룡들처럼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유현석 (순천향대 교수·신문방송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10. 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