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합의 北·美 이견과 과제
	2005-09-22
북핵합의 北·美 이견과 과제 베이징 6자회담의 공동성명이 나온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 북한과 미국이 ‘핵 포기’와 ‘경수로 제공’ 시기를 놓고 서로 정반대의 입장으로 맞서 일대 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와는 달리 이번 북핵 4차 6자회담에서는 한국이 나름의 주도적인 외교역량을 발휘하여 결실을 본 것인데 아직 이행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벌써부터 마찰음이 들린다. 공동성명의 문리해석에 따른다면 북한을 제외한 한·미·일 등 5개국의 의견이 일치하는 바대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가 시기적으로 선행돼야 함에도 북한이 ‘선 경수로 제공’의 ‘억지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신이나 일부 분석가들은 11월 초로 예정된 5차 6자회담의 이행협상 전략 차원에서 유리한 고지점령을 위한 사전포석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순한 협상 차원 이상의 근원적인 변수가 개재돼 있다. 즉, 그 배후에는 미국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은 북한 군부 강경파의 입김이 강하게 서려 있는 것이다. 몇 가지 가설을 제기해 본다. 우선, 북핵 6자회담은 미국 부시 2기행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 4월부터 북한 군부가 전면에 나서서 전담·관리하는 체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8월초에 열린 6자회담 1단계회의가 결렬된 것은 군부가 평화적 핵이용권을 배제한 이른바 ‘4차초안’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같은 상황 판단은 북한을 전후 8차례나 방문하여 당·정·군의 요인들과 장시간 만났던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의 주장이기도 하다. 북한 군부는 6자회담과 같은 시기에 평양에서 열린 제16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공동보도문 조율 과정에 개입, 일부 문구를 수정하여 ‘남북 군사회담의 개최를 군사당국에 건의하는 것’으로 표현을 희석시켰다는 후문이다. 그러면 베이징 6자회담의 공동성명 발표 하루 만에 북한이 핵심 내용의 주요 부분을 번복한 배경은 무엇인가? 이는 무엇보다 중국이 중재안을 내놓고 강력하게 합의를 종용하는데다 회담 파국의 책임을 북·미 가운데 어느 한 나라가 지게 돼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미국이 그토록 피하던 경수로 제공의 개연성을 수용함에 따라 군부와 충분한 협의 없이 이뤄진 합의였기 때문이다. 북한 군부 강경파의 대미 불신은 기본적으로, 94년 제네바 합의가 ‘북한의 붕괴’를 전제로 한 불온한 합의였다는 인식과 함께 2002년 ‘부시 핵 선제공격 독트린’과 이를 보다 구체화한 최근의 미국 펜타곤 ‘합동핵작전 독트린’ 등을 통한 대북 압박설에서 비롯됐다. 이 밖에 2004년 10월의 미국 의회 북한인권법 통과, 최근의 레프코위츠 인권특사 임명 등 대미 불신을 가중시킨 것도 무관치 않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북한은 한·미 측의 신포 경수로 프로젝트를 대신하는 200만㎾ 전력 송출 제의를 ‘천진난만’한 생각이라고 비하하면서 ‘경수로 제공없는 핵억제력 포기’는 꿈도 꾸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 전력의 절반을 남한에 의지한다는 것은 군부의 입장에서 안보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 측에 대해 ‘경수로 제공’을 대미 신뢰의 징표로 삼겠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그와 같은 뿌리 깊은 불신을 대변하는 것으로 향후 5차 6자회담의 항로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특히 5차 6자회담의 이행단계 협상에서는 남한의 경제적 부담 문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남한은 200만㎾의 전력을 제공하고 에너지(중유)도 제공하는 것으로 돼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새로운 경수로 제공에도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관계 요로의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 경제가 어려워 세금도 잘 걷히지 않는 상황에서 경수로 건설기간을 감안하면 최대 12조원이라는 엄청난 비용 부담과 함께 신포에 이미 투입된 1조6000억원의 공사비가 사장되는 허망한 일이 되기 때문에 비용 분담도 큰 현안임에 틀림없다. 김경수 (명지대 교수 · 국제정치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9. 2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