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治 흔드는 공소시효 배제
2005-08-19
法治 흔드는 공소시효 배제 노무현 대통령이 제60주년 광복절 경축식 축사에서 제기한 과거 국가권력에 의 한 인권범죄의 민ㆍ형사 시효 배제가 일으킨 파장이 적지 않다. X파일 도청 파문 와중에 나온 이 발언은 당장 DJ정권 외에 YS정권 시기 도청행 위도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광복 후 권위주의 정권' 역시 사 정권에 들어오므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연정과 선거제도 재편을 압박하는 효과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형사적인 시효 배제나 조정문제는 원칙적으로 장래에 관한 것"이라 축소하긴 했지만 문제는 '원칙적'이라는 단서다. 과거 국가범죄 행위를 완전히 제외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을 분열의 역사 치유라고 보는 노 대통령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 목적이 어떤 변화도 용납하지 않았던 지배체제와 이에 결합한 기득권체제를 극복하고 나라를 지속 적인 발전의 토대 위에 올려놓는 데 있다 해도, 이는 대통령 말대로 '올바른' 정리와 청산이어야 한다. 이미 국회가 '일제 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을 만들고 '진실ㆍ화해 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도 만들려 하며 또한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 에 관한 특별법'까지 계류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국가권력을 남용해 인권 과 민주적 기본질서 침해 범죄 내지 그로 인해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에 대한 배상과 보상에 민ㆍ형사 시효 적용을 배제하거나 적절하게 조정하는 법률을 만 들 필요성이 있다 해도, 그 절차는 옳아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이 염원하는 대 로 국가 신뢰를 회복하고 정의를 바로세울 수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국가권력 의 정당성과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의 도덕성과 신뢰는 훼손된 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먼저 법치주의 헌법원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법 치주의는 법률에 근거해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원리다, 법이 권력을 제한하 는 만큼 국민의 법적 안정성은 보장된다, 이로써 국민은 법적인 평화를 누리게 된다, 이를 형사법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다, 그래서 과거에 범죄 가 아니었던 것을 지금에 와서 소급하여 처벌할 수 없다, 또한 과거 범죄라도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기간을 한정해 형벌을 끝없이 이어지는 보복과 구분한 공 소시효 제도를 인정하는 것 등이다. 이를 이해할 때 비로소 법치주의를 위해 보장되는 국민의 법적 안정성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공동체의 실질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공소시효 등을 제한할 수 있다는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 즉 공소시효 배제 내지 조정이 어느 정도까지 필요하고 당위적으로 인정될 수 있느냐 하는 현실적 내용을 정할 수 있는 것이 다. 이와 관련해 이미 헌법재판소는 '5ㆍ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합헌 결 정에서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 죄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 관련자를 소급적으 로 처벌하는 것에 대해 이들 군사반란과 쿠데타 주모자들에 대한 법적 안정성 보다는 실질적 정의를 우선해 조화시킨 합헌적 규정으로 봤다. 현실적으로 이 결정 취지를 참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국가권력에 의한 사망ㆍ상해ㆍ실종 사건, 중대한 인권 침해사건, 각종 조작 의혹 사건 등이 모 두 공소시효 배제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 헌재 결정이 합헌이라 하지만 사실 헌재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 찬성이 있 어야 위헌이 되는데 한 사람이 부족한 5명만이 위헌이라 하였기에 부득이 합헌 으로 결정한 것일 뿐이다. 말하자면 위 5ㆍ18특별법도 다수 의견은 소급입법이 어서 위헌이라는 의견, 즉 처벌은 안 된다는 의견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문제는 국회 입법 과정에서 헌법적으로 논의해 결정되는 절 차가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노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확정 판결에 대해 서도 보다 융통성 있는 재심이 가능하도록 해서 억울한 피해자들이 명예를 회 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방식도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소급처벌을 인정하는 법을 가능한 한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마약과 같아서 끊기 어려운 유혹을 권력자에게 주는 치명적인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 출처 - 매일경제 2005. 8. 19 테마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