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실종된 TV, 켜기가 겁난다
	2005-08-01
윤리 실종된 TV, 켜기가 겁난다 시어머니 뺨 때리고··· 성기 노출하고 얼마 전 어느 원로 사회학자는 필자에게 왜곡된 서구 문화의 물결에 의해 우리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이 급속히 파괴돼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동양의 전통적인 가족사회학보다 서양의 가족사회학만을 평생동안 공부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학자의 말처럼 최근 우리 주변에는 그간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전통적인 개념의 가정이 급속도로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국민들은 지금 텔레비전 켜기가 겁난다고 말한다. MBC TV가 지난 주말 생방송에서 성기 노출 사고를 일으킨 건 말할 것도 없고, KBS가 최근 드라마를 통해 아이를 잘못 보았다는 이유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뺨을 무참하게 때리는 장면을 방영, 국민들에게 심한 상처와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드라마를 연출한 KBS의 PD는 이같은 패륜행위를 소재로 한 연속극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게되자 “요즘 세태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변명은 군색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이 부끄러운 장면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시청자들,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수치심보다는 호기심과 함께 모방적인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영방송인 KBS마저 가정을 파괴하는 패륜행위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방영할 수 있게 된 상황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인성교육의 부재로 인해 도덕적 규범인 ‘예(禮)’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통사회 조선시대에 ‘예’는 인간을 본능적인 욕구에 지배되는 동물과 구분짓는 사회적인 규약 내지는 법과도 같았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그것은 거추장스러운 형식으로서 곧 폐기 처분될 위기에 처해 있다. 국민의 의식교육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영방송의 제작진이 패륜적인 장면을 현실의 반영으로만 해석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에 대한 ‘예’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예’를 가정에서 어른들이 가르쳤지만, 광복 후 급속도로 전개된 산업화와 함께 ‘예’에 대한 교육은 ‘수신(修身)’ 혹은 ‘도덕’ 시간을 통해 학교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정으로부터 인성교육의 막중한 책무를 넘겨받은 학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아니 교육 수장이 새로 임명될 때마다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인해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리고 교사는 이제 학생들에게 ‘지식을 파는 사람’으로만 비치고 있다. 이렇게 ‘예’에 대한 ‘인성교육’이 근대화의 산물로 찾아온 핵가족 시대와 함께 사라져야 하는가?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마셜 매클루한이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모든 사회적·문화적 변동을 이끌 수 있는 ‘메시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KBS는 미풍 양속인 ‘예’와 같은 전통 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함은 물론 국민의 의식 수준을 선진국처럼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종족보존’이라는 동물적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인간에 대한 마지막 예의”도 저버린 패륜 장면을 무감각하게 희화적(戱畵的)으로 방영하는 ‘미디어의 메시지’가 시청자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작용할 것인지는 여기서 새삼 밝힐 필요도 없다. 그 동안의 정부와 위정자들은 밤낮없이 정권 연장을 위한 ‘표모으기’에만 열중한 채 사회의 근간이 되는 인성교육에 대한 올바른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당국은 이제라도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내용이 공영방송을 통해 방송될 정도로 우리 사회가 붕괴되고 있다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패륜적 드라마와 성기 노출 장면 방영으로 물의를 일으킨 KBS와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교육적인 역할을 통감하고 국민에게 사죄하기 바란다. 이태동 (문학 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5. 8. 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