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뢰 짓밟은 政-經-言 유착
	2005-07-25
국민신뢰 짓밟은 政-經-言 유착 이른바 안기부 ‘X파일’이라 불리는 도청 테이프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과거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정치비리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도청(盜聽)과 정치 비리라는 두 문제가 혼재하면서 그 파문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초점은 역시 정치 비리에 관한 내용이다. 누구 말대로 그동안 야사로만 읽었던 내용들이 이제 조선왕조실록처럼 정사로 읽는 것과 같은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정치권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 정도로 구체적인 자료라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일 것이라는 개연성이 짙어가고 있다. 아마 상당수의 국민도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실체가 지금에 와서야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지 모른다. 물론 그 진실 여부야 앞으로 밝혀지겠지만, 드러난 내용이 사실이라면 가히 충격적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정치 비리는 정경 유착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그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번 사건이 보도된 대로라면, 정경 유착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한 언론사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정경 유착을 넘어서 언론까지 그 위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무서운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은 말할 수 없이 확산됐다. 그동안 정부는 국민의 여망을 좇아서 입법과 정책을 통하여 정치개혁 작업을 지속적으로 펴 왔다. 이번 사건이 보도대로 과거 정권에서 정치개혁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일어난 것이라면, 앞에서는 정치개혁을 외치면서 뒤로는 정치 비리를 자행한 그 철저한 이중성에 국민은 기가 막히게 농락당한 것이다. 또한, 한 점의 망설임이나 부끄러움 없이 민주주의라는 무대를 이용하여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면 국민을 허수아비로 보고 신뢰를 짓밟은 것이다. 장 자크 루소나 존 로크와 같은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국민주권을 외치면서 시민사회를 연 것이 진정 인간사회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인지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회의가 든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주권자의 자기 지배 원리이다. 이런 행태의 정치 비리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을 파괴하고 공동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궁극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론에 보도된 대로라면, 정경 유착을 넘어서 민주주의 실현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언론까지 포함돼 유착관계가 형성된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 심각성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매번 반복되고 있는 사건들을 그 진실 여부와 씨름하면서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마음은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사건의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부정의 끝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국민의 당혹감 역시 헤아릴 길이 없다. 서로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진실게임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겠지만, 그 전에 이런 사건들로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은 누가 달래줄 것이며, 침해된 국민의 권리는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아무튼 드러난 내용의 진위는 앞으로 명백하게 밝혀져야 하고, 그 결과로 드러나는 모든 법적 책임은 관련 당사자들이 전부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불법 도청 문제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이 그 진실성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국가와 사회를 주도하는 지도층이 가져야 할 도덕성이란 덕목이다. 또한, 이 사건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치개혁을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며, 국민은 주권자로서 그들을 향한 감시의 눈길을 한시라도 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7.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