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원론적인 노·부시 합의
	2005-06-13
너무나 원론적인 노·부시 합의 지난 11일 새벽(미국 시각 10일 오전) 미국 백악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불용(不容) 원칙 등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확인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하였다. 아울러 양 정상은 한·미 동맹관계는 굳건하며 몇 가지 조정되어야 할 분야가 남아 있긴 해도 전략적 동맹관계는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임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한·미 정상 간 합의가 갖는 긍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부가 발표한 회담 결과를 살펴보면 너무도 평범하고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어 오히려 향후 한반도 사태 진전과 관련한 일말의 의구심과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고 영변 원자로 가동을 중단한 채 조만간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해 핵무기를 늘려 가고자 하고 있다. 북한 당국자들이 추가 핵무기 제조뿐만 아니라 핵실험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 불용 원칙을 천명할 뿐 한반도 비핵화를 실천할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공허한 정치적 선언을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6자회담에 북한이 조속히 복귀할 것을 종용하는 동시에 6자회담에 임하는 양국의 입장은 지난 3차 회의에서와 동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이미 핵 보유 국가임을 선언한 북한에 대해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전제로 한 3차 회의의 의제들은 실효성을 상실했다. 북한은 이미 6자회담을 핵 군축회담으로 규정하고 회담 참석을 미루고 있다. 한·미동맹은 한·미 관계 전반을 규정하는 핵심 사항이며 동시에 한국으로서는 21세기 국가 목표와 비전을 실천하는 데 중심 축 역할을 할 것이다. 이번에 양국이 파격적 형식하에서도 정상회담을 추진한 배경에는 양국 관계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는 데 따른 우려 가 있었다. 이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의 다급함이 배어 있었고 결과 역시 환부에 대한 근본 치료보다는 봉합 차원이었다. 국가 간의 관계는 상대가 있게 마련이어서 어느 한 쪽만의 노력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동맹국이자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하는 것과, 동족이지만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이자 실패한 체제인 북한을 다루는 것을 동일시하거나 오히려 민족 공조의 환상에 함몰되어 국제 사회의 현실과 우리의 지향 목표를 외면한다면 제2, 제3의 한·미정상회담이 불가피할 것이고, 결과 역시 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그때그때 긴급 상황을 봉합하는 데 급급할 뿐일 것이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한·미 양국의 실무진은 사전에 많은 준비 과정을 거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동맹국으로서 진정한 신뢰가 구축되어 있다면 굳이 두 시간 남짓의 회담을 위해 그토록 먼 여정을 가질 필요 없이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동시에 북핵 문제에서 그토록 한 목소리를 내자고 다짐하고서도 돌아서면 엉뚱한 일들이 재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해결 없이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도 점차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의 시각으로는 21세기 세계화의 시대를 능동적으로 열어갈 수도 없고 9·11 테러 이후 구축된 신(新)국제안보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도 없다. 외교안보통일 부문을 전면적으로 재정비하되, 폐쇄적 민족 공조나 공허한 통일 논의에 공명할 게 아니라 자폐증에 빠진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기 위한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조체제 구축에 남은 임기를 올인해야 할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5. 6. 1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