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간섭 줄여야 경제가 산다
	2005-06-02
정부간섭 줄여야 경제가 산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2.7%에 머물렀다는 발표 이후 정부의 연초 목표인 5%대 성장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우리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비교적 낙관적인 견해를 유지했던 한국은행마저도 현재의 경제상황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으며, 최근 한은 총재는 국내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음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장기화된 내수 침체와 수출 호조세 둔화 등 우리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장기불황과 같이 부동산·금융 전반에 걸친 복합적인 경제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한은 총재의 발언은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유비무환의 자세를 촉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형성된 경제 거품이 붕괴하면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막대한 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85년 플라자협정 이후 일본은 엔화 가치의 급격한 상승이라는 위기를 겪는다. 내수 부양책에 의해 통화량이 급증함에 따라 부동산·주식 시장에 버블이 형성되었고, 이후 버블이 붕괴되면서 주식·부동산 시장에서의 자산가격이 폭락하는 사태를 맞게 된다. 나아가 버블 붕괴 과정에서 발생된 대규모 부실 채권은 이를 담보로 막대한 자금을 대출했던 금융시장마저 연이어 붕괴시켜 실물시장과 금융시장 모두가 깊은 침체에 빠지게 되는 ‘복합 불황’의 결과를 낳았다. 부동산과 금융 시장의 버블 붕괴에 따른 자산가격의 급락은 대규모 자본 손실을 발생시켜 가계와 기업의 소비·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었다. 더욱이 일본 내부의 지나친 고비용 구조는 기업의 수익성을 감소시켜 많은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산업 공동화 현상마저 심화되었다. 결국 일본은 당시 수출이 호조세였음에도 내수를 회복시키지 못하여 90년대 전반에 걸쳐 제로성장 궤도를 달리는 ‘잃어버린 10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장기불황과 현재 우리의 경제 상황이 비교되는 것은 우리 경제가 당시와 유사한 구조를 지녔을 뿐 아니라 최근의 외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미 달러화 약세에 따른 원화 가치의 상승과 장기화된 내수침체 등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들은 1990년대 전반에 일본 경제에 나타났던 현상들과 매우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외적인 유사함과는 달리 국내의 실물·금융 시장은 90년대의 일본과 같은 버블이 형성돼 있는 상황이라 말하기 어렵다. 부동산 시장의 경우 꾸준한 오름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이는 버블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수도권 지역 규제에 따른 공급 축소에 의한 상승 요인 탓이 크다. 또 잦은 정책 개입으로 건설투자업 등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금융시장은 외환위기 이후 이미 상당한 구조조정 과정을 겪은 바 있으며, 금융 시스템이 발달함에 따라 국제금융시장 속에 통합되고 있으므로 90년대의 일본과 같은 버블이 형성될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오히려 걱정해야 할 것은 버블 붕괴에 따르는 불황의 가능성이 아니라 내수 위축이 점차 심화된다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버블에 빠져 있다기보다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노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잠재 성장률 전망치는 5% 이하로 하락한 데다가 올해 실제 성장률은 그에도 못미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의 지속적인 약달러화 정책과 유가 상승, 북핵 위기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들이 악재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경제에서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이 취약함을 외부 요인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경제 위기 해결에 ‘올인’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다양한 정책과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으나 그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결국 시장을 이끌어 가는 동력은 정부가 아닌 기업과 가계라는 민주체이고, 민간 주체를 움직이는 방법은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고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는 길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하현 (연세대 교수·경제학) 출처 - 세계일보 2005. 6. 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