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흑자의 명암
	2005-05-12
건강보험 재정 흑자의 명암 건강보험(건보) 통합과 의·약 분업으로 야기된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겨우 이겨내고 올해에는 1조5000억원 정도의 재정 여유가 예상되어 보험급여를 확대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안 돼 지역가입자에 대한 정부의 보험료 지원을 중단한다는 보도가 나와 급여 확대에 차질이 생길지 모르게 되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보다 궁극적인 대책은 건강보험제도가 갖는 기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간의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률을 같게 하더라도 직장가입자는 월급 인상률이 추가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보험료 부담이 많아지게 돼 있다. 그 결과 건보 통합 이후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인상률이 지역가입자에 비해 2배 정도나 높은 비형평성 문제가 있다. 이러한 부담의 비형평 문제는 통합 건보의 위헌성 문제로 비화된다. 건보 통합의 가장 큰 난관은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 간의 보험료 형평 부과의 문제였다. 형평 부과가 가능하다는 DJ정부는 통합을 추진했고, 어렵다고 보는 측에서는 통합을 반대했었다. DJ정부도 2000년 7월 건보 통합을 단행하면서 보험료의 형평 부과 문제로 재정 통합은 1년 반을 유예시킨 바 있다. 마침내 보험료 형평 부과 문제는 헌법재판소(헌재)에까지 가기에 이르렀다. 헌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소득 형태와 소득파악률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직장·지역가입자 집단의 통합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법은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 또는 객관적인 소득 추정을 위해 1년반의 유예기간(2002년 1월까지의 기간)을 둠과 아울러 직장·지역가입자 사이의 부담의 평등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제도 장치를 두고 있으므로,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 통합을 규정하는 통합법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헌재는 재정 통합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어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이나 소득 추정의 가능성을 생각했고, 혹시 어렵더라도 법적 장치(법 제31조의 재정운영위원회)가 두 집단 사이의 부담의 평등을 조정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통합 이후 거의 5년이 흘렀지만 보험료 부과 방식은 여전히 두 가지로 다르며, 지역가입자에 대한 객관적인 소득 추정은 어려워 보험료 부담에서 직장가입자는 불리한 입장에 있다. 건보 통합은 헌재가 제시한 합헌의 두 가지 전제조건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 여전히 위헌성 시비가 있다. 부담의 형평성이라는 문제가 해결돼야 보험료를 제대로 인상하여 보장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건보 통합과 의·약 분업을 하면서 증가된 재정 지출의 용처를 제대로 밝히는 일이다. 건보 통합이 이뤄지기 전 해인 1999년과 통합 직후인 2001년의 보험급여비 지출을 비교해보면, 5조원 이상 늘었으며, 2000년과 2001년을 비교하면 약 4조원이 증가했다. 건보 통합과 의·약 분업 이전에 비해 해마다 4조~5조원을 더 거두어야 하는 바탕 위에서 보험료가 인상돼 오늘의 재정 흑자가 생겼다. 문제는 이렇게 막대한 재정이 건보에 더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의 질이 개선됐다거나, 편의성이 나아졌다거나, 의료기관의 경영수지가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계의 의약품비 지출이 증가했음을 도시가계조사는 밝히고 있다. 의·약 분업과 건보 통합 이후 크게 늘어난 보험의료비가 어디로 어떻게 지출됐는지에 대한 명쾌한 분석이 있어야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쉽게 얻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규식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5. 1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