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3不' 법제화 안된다
	2005-05-10
대입 '3不' 법제화 안된다 우리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에 살고 있다. 어린 고등학생들이 ‘내신전쟁’에 휩싸여 강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해당 대학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는 것으로 족할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 전형 계획이 시중 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학생 400명이 모인 ‘촛불집회’에 교사 600명이 동원되고, 경찰 6000명이 배치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 가계 부담 총 사교육비가 16조원에 달하고, 외국 유학, 연수 경비, 동반 가족 생활비가 8조1000억원이나 되며, 서울시의 한 해 조기 유학생이 1만2000명이 넘고, 대기업의 대졸 사원 한 사람 재교육비가 1억원이 넘으며, 정부 기관이 국립대학 총장 선거를 관리하겠다는 나라에 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배후에는 막강한 힘을 가진 교육부가 있다. 우리 교육 문제의 근본 원인은 모두 교육부에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자신의 정책을 홍보하는 데 행정력을 주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8학년도 대입은 예정대로 시행하며, 대입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이른바 대입 ‘3불’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교육부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창의적인 인재와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탐색해가는 건강한 시민 양성은 도외시하고, 오직 사교육비 감소라는 망령에만 사로잡혀 헛된 정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대입 ‘3불’의 법제화는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일 뿐이다. 대입 3불이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할 수는 없다. 상대평가한 내신이 대학 입시의 중요한 전형 자료 구실을 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지원하는 상황에서 내신은 변별력을 상실하고 면접이나 논술이 중요하게 되고, 이를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날 것이다. 교육 문제는 정부가 더 좋은 정책을 입안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교육 문제는 정부가 독점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했듯이 정부는 교육 문제의 해결 주체가 될 수 없다.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 계획에 따른 교육 개혁은 원천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성공하지 못한 것과 같다. 정부의 중앙 교육 계획이 성공하려면 학교·학생·학부모가 원하는 것과 그들의 행위를 결정하는 요인들을 모두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정부의 정책이 강제로 시행되면 의도하지 않은 폭력이 교사와 학생, 학부모에게 행사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자원이 낭비된다. 사교육과 해외 조기 유학도 정부의 교육 독점이 초래한 불필요한 낭비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교육이 정부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정부는 선의지를 가지고 교육 개혁을 단행하면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환상을 버리고 교육권의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의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그동안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가 확장돼 왔지만 교육에서만 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정부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평준화하고 대학입시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교육 선택의 자유를 말살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학교와 학생, 학부모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것이 모든 교육 문제의 원천이다. 이제 정부는 학생과 학부모가 자신들의 교육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 주도의 교육 개혁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선택, 책임을 보장하는 진정한 교육 혁명이다. 정부는 학생들과 대학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대학, 자신에게 적합한 학생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건강한 의식을 지닌 시민으로 자랄 것이며,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치열한 입시 경쟁도 완화된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 철학) 출처 - 문화일보 2005. 5. 1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