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對北 쓴소리
	2005-04-15
공허한 對北 쓴소리 독도문제로 일본과 얼굴을 붉히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엔 북한에도 쓴소 리를 했다. 베를린 동포 간담회에서 이젠 북한에도 할 말은 하고 얼굴을 붉힐 일 있으면 붉히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아울러 북한이 일방적으로 고집을 부리는 남북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 도 드러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미국 땅에서 북한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며 북한 편을 들었던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면 이번 베를린에서의 발언은 그의 대북정책이 바뀌었는가라는 의아심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놀라운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엇갈린 평가와는 달리 북한이 크게 실망 했음은 분명한 일이다. 노 대통령의 독일 방문 직전 평양에 들러 북한의 고위 인사를 만나고 서울에 온 코시크 한독의원연맹 회장은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의 계기가 되었던 2000년 3월의 베를린 선언을 기억하고 있으며 이번 노 대통령의 독일 방문시 남북관계에 전기를 마련해 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북한으로서는 장기간 중단되어 있는 남북 관계의 돌파구 마련 을 위해 노 대통령이 제2 베를린 선언을 해주길 기다렸다는 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북한이 기대했던 베를린 선언 대신 북한을 냉정하 게 비판한 역베를린 선언이 나온 것이다. 그럼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역베를린 선언은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일까? 무엇보다도 최근 노 대통령의 대북감정이 여과 없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부시 재선 이후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 대통령은 온갖 비판을 무릅쓰고 북한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미국을 진정시키는 데 적잖은 힘을 쏟은 게 사실이다. 그 러나 정작 북한으로부터 온 결과는 지난 2ㆍ10 성명의 핵보유 선언과 6자회담 무기한 불참이었다. 노 대통령 개인의 성격과 스타일을 감안할 때 분명 북한에 섭섭함과 불쾌감을 가질 만했고 이는 언젠가 드러내놓고 말을 해야만 했을 것 이다. 또한 이번 발언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북핵 국면에서 우리 정부가 대북 압박 의 수단을 사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북한의 회담 불참 선언과 미국의 회담 복귀 요구만 평행선을 긋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회담을 재개시키 고 남북관계를 복원하려면 이젠 북한을 움직이기 위한 일정한 압박이 필요하다 는 것이다.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통일부 차관이 추가적인 대북 유화조치는 없 을 것이라며 비료 지원은 당국 간 협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 주위 참모들이 부쩍 북한 탓을 많이 한다는 최근의 청와대 분위기도 같은 맥락이다. 아직 단정하기엔 이르지만 만약 이번 베를린 발언이 기존 화해 협력정책의 수정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매우 중대한 국면이 된다. 문제는 대통령의 발언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발언 이후 한국이 얻고자 하 는 것을 과연 얻을 수 있느냐이다. 대통령 개인이 북한에 섭섭한 나머지 편한 자리에서 그 심정을 밝힌 것이라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도 대통 령이 외국을 방문한 공개석상에서 할 일은 아니다. 이번 발언이 대북 압박의 시작을 의미한다면 이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 된다. 지금 정부가 원하는 것은 북한이 6자회담에 나와서 핵문제가 잘 해결되고 아울 러 남북대화가 재개되는 것일 게다. 그러나 과거와 다른 압박과 강압의 방법으 로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국이 행할 수 있는 대북 압박조치라면 북한과의 교류협력 사업을 중단하는 것이 가장 큰 것일텐데 실제 그 경우 북한이 입는 손실은 매우 미미하다. 오히려 싼 임금 때문에 남쪽 공장 을 정리하고 개성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외교는 국내 문제와 달라서 자신이 원하고 희망하는 바를 말한다고 해서 곧바 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독도로 인한 한ㆍ일관계가 그렇고 진통을 겪 고 있는 한ㆍ미동맹 관계도 그렇다. 오랫동안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와도 힘든 것인데 하물며 아직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에 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대놓고 말하고 주장한다고 해서 북한이 우리 뜻대로 움직 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번 노 대통령의 베를린 발언은 우리의 속을 시원하 게 해주었을지는 몰라도 정작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방향으로 간 것이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언론학부 교수) 출처 - 매일경제 2005. 4. 15 테마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