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개혁' 규제부터 풀어라
	2005-03-14
'대학개혁' 규제부터 풀어라 세계화 시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국제 경쟁력이다. 이 경쟁의 원동력은 고급 인력 양성이며, 인력 양성의 주체는 바로 대학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들은 그 동안 양적 팽창에 치중해 온 나머지 세계적 수준에서는 크게 못 미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교육계 안팎의 중론(衆論)이다. 지난 1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대학개혁의 청사진, 제 2단계 개혁’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고학력 비중은 높지만 대학 교육 경쟁력이나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고급 인력 공급 능력에서는 크게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KDI는 국가 경쟁력 평가 기관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3년 보고서를 인용해 조사 대상 30개국 가운데 한국은 25~34세를 대상으로 한 고학력자 비중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학교육이 경쟁 사회의 수요를 얼마나 충족시켜 주는지’를 보여 주는 대학교육 경쟁 부문은 28위로 최하위였고, ‘자격을 갖춘 기술자가 노동시장에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고급 기술자 공급 부문에서는 25위에 그쳤다. ‘교육체제가 경쟁 사회의 수요에 얼마나 잘 부합되는지’를 보여 주는 교육 체제 경쟁력 부문에서도 21위로 역시 하위권이었다. 여기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233개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대학 교육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26점으로 낙제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낙후성과 후진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 개혁은 21세기 우리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지상 과제로 더 이상 늦출 수 없게 됐다. 세계 각국 역시 대학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 혁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실제로 교육인적자원부는 2009년까지 대학 정원을 9만5000명 줄이는 대학 구조개혁을 이미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이나 시장 논리로만 대학 개혁을 시도할 경우 ‘쏠림 현상’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인문·사회과학 등 기초과학의 황폐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대학의 부실화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교육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이를 애써 외면하면서 부실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대학에 떠넘긴 채 대학 개혁을 시도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다. 교육 현장의 경험이 없는 교육 관료들이 교육을 지원해야 하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교육 정책을 독점하고 교육 주체 위에 군림하면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교육부의 환골탈태(換骨奪胎)와 교육 관료들의 의식 개혁을 통해 교육부의 개혁이 먼저 이뤄져야 교육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부실 대학을 가려낸다는 차원에서 신입생 미달 대학과 졸업생 취업률, 그리고 교수 1인당 학생수를 공개하고 세계적인 대학 육성을 위해 15개 우수 대학을 선정, 2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2002년도 1년 연구비 예산이 4억1700만달러(약 5421억원)임을 감안할 때 15개 대학에 2000억원을 골고루 나누어주어 과연 세계적인 대학 육성이 가능하겠는가? 따라서 대학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KDI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대학간 인수·합병의 활성화, 적극적 대외 개방, 그리고 대학 입시에 대한 자율권 부여 등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학생 선발권은 대학이 아니라 교육부가 쥐고 있다. 뿌리 깊은 관료주의가 대학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대학도 산업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어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것이 대학 경쟁력 확보의 지름길이다. 이윤배 (조선대 컴퓨터공학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출처 - 문화일보 2005. 3. 1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