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법 개정, 개혁아닌 개악
2004-11-25
공정법 개정, 개혁아닌 개악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 소속 여당 의원들이 단독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에 대해 재계와 야당,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강력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심지어 여당 소속 의원인 규제특위 위원장도 반대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비판이 이처럼 거센 것은 이로 인해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이 외국의 투기자본으로 넘어가 국부가 유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상공회의소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우량 2백대 상장기업들 중 62.8%가 외국인 주주와 적대적 M&A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며 작년에는 2001년의 3배인 7조2천3백91억원을 외국인 주주들에게 이익배당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외국투기자본이 우리 기업들의 경영투명성을 제고한다는 견해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경영투명성 제고의 대가로 우리 국가경제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기업의 경영투명성 제고라는 1의 이익을 위해 10배의 손해를 감수하는 이른바 '국부유출촉진법 개정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법안에 포함돼 있는 출자총액제한유지 규정은 국내 상위 18개 기업의 경우 외국 투기성 자본이 국내 다른 기업들의 경영권을 찬탈하려고 시도할 때 백기사로서 경영권 방어에 협조하지 말도록 법으로 금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경영권 방어에 있어서 백기사제도는 이미 선진국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는 제도이며 이 제도를 통해 자국 기업들의 경영권을 외국자본들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연기금을 이용해 국내기업들의 경영권을 방어하고자 하는 정책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현행 출자총액제한규정만을 삭제한다면 굳이 국민의 노후 생명줄인 연기금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기업 스스로 보다 효과적인 경영권 방어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오직 효율성보다는 당리당략에 올인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 정부와 여당은 기업에 대한 규제는 고수하되 규제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은 국민 부담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개정안 중 금융계열사 의결권 15% 제한규정은 규모면에서 기업다운 면모를 갖춘 상위 9백8개사는 설령 금융회사에 투자하더라도 주주권리를 행사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금융회사를 세울 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최저자본금' 요건 때문에 대기업외에는 투자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즉 정부는 기업들에 금융사 설립시 투자를 요구하면서도 이들의 의결권은 제한하는 어처구니 없는 금융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되는 것은 금융사들이 경영권 시장의 조율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자본시장에서 악화인 '투기자본'이 양화인 '투자자본'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함께 현재까지 악화에 대한 견제기능은 대기업들이 대주주인 우리 금융회사들이 맡아 왔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며 오히려 미국이나 일본,유럽 등 선진국에서 더 심화되고 있다. 우리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기업의 경영투명성 제고라는 구시대적 기업지배구조 개선작업을 지속하려 하고 있다. 이미 증권집단소송법의 제정으로 경영투명성에 대한 견제 기능은 정부로부터 시장으로 이전됐다. 또 개정안대로 부당내부거래의 적발을 위해 계좌추적권을 재도입하지 않더라도 우리 자본시장은 외국주주와 국내주주에 의해 충분히 견제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추진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분명 우리 경제현실을 외면한 탁상공론식 개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선진 각국 정부는 자국기업 경영권 보호를 위해 모든 정책을 동원하고 있으며 외국자본에 차별을 가하는 입법작업에 혈안이 돼 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 정부는 국내기업들에 대한 역차별을 가하고 있다. 부디 우리 정부와 여당이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당리당략을 위해 국부를 유출하는데 앞장서지 않기를 바란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 기업소송연구회 회장) 출처 - 한국경제 2004. 11. 2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