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위헌'이 남긴 것
	2004-10-22
'수도이전 위헌'이 남긴 것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이제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되었다. 그 동안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공방이 장기간 지속되었지만, 각기 찬반 주장만 엇갈릴 뿐 구체적인 의견 접근은 없었다. 정부 여당에서는 행정수도 이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계속 추진할 수 있었던 근거는 여야 합의에 의해 제정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었다. 이제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행정수도 이전은 국민투표를 통과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사실 헌법재판소의 결정 논거에 대해서도 헌법이론상 논란의 여지가 작지 않다. 수도에 관한 사항이 관습헌법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 변경을 위해 국민투표가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거가 확실하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며, 이러한 결정이 내려진 이상 이를 뒤집을 수 있는 또다른 법적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부터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분석하고 그 근거의 정당성을 문제삼는 것보다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이 갖는 의미와 비중 내지 파급 효과 등을 고려할 때, 이처럼 중대한 사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하지 않으려 했던 정부 여당의 태도에도 문제는 적지 않았다. 이미 국회를 통과한 법률에 대해서 다시금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대통령의 해명이 있었지만, 국회 내에서도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국회 내에서 법률 자체의 개정이나 폐지를 전제로 한 진지한 논의가 진행됐어야 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지 않은 채로 행정수도 이전을 강행하려 했던 결과가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모든 국가적 자원의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고 지역 간의 균형 있는 개발을 위해 행정수도 이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주장을 국민적 합의를 통해 공인 받고자 하는 적극적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단순히 목적의 정당성만을 가지고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의 부족 내지 결여를 정당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 행정수도 이전은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만일 정부 여당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유로 행정수도 이전 논의 자체를 전면 백지화한다면, 그것은 기존 추진 과정이 국민적 합의와는 전혀 무관한 독선적인 활동이었음을 자인하는 것밖에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그 동안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사업에 소요되었던, 그리고 그로 인해 유발되었던 막대한 비용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또한 국민투표에 의해 행정수도 이전이 부결될 경우에도 유사한 문제는 발생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을 처음부터 기울였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국민투표를 통과하여 행정수도 이전이 재개될 경우에도 일정 기간의 사업 중단에 따른 손실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와 여당, 나아가 모든 정책담당자들과 정치인들은 깊이 명심하여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결코 눈앞의 성과에만 연연하여 무리하게 일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듯하면서도 빨리 가는 길, 그것이 민의를 수렴하면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민주적인 일처리 방식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 헌법학) 출처 - 세계일보 2004. 10.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