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통성 훼손 안된다
	2004-10-20
국가 정통성 훼손 안된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국보법이 폐지된다 해서 대한민국이 소멸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보법이 폐지될 경우 그로써 위협받게 되는 국가의 안전보장, 즉 안보를 위한 법제도적 대응책을 세워 놓는 것은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실정법 질서 체계상 필요하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일관되게 말하듯이, 국보법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규범으로 간주돼 왔다. 국보법은 일제 식민지와 미군정 시기를 거쳐 성립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분명히 한 제헌헌법 이래 국가적 정통성을 확인하는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지닌 법률이다. 물론 이 국보법은 인권에 합치하는 등의 법치국가적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그간 인권 침해 요소와 정권유지적 악용의 사례가 많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열린우리당의 이번 국보법 폐지 당론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국가적 정통성에 관한 것이다. 이는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과 관련되는 헌법에 관한 문제로, 우리 법질서에서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인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정치단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즉 ‘외국’이나 ‘준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단 이래 일관된 판례다. 그래서 교류·협력의 부분에 대해서는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하여 이를 별도로 규정하면서도 국보법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국보법을 폐지하더라도 헌법이 지시하는 대한민국의 규범적 정통성과 북한의 불법점거 단체성을 확인하는 규정은 두어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불법 정치단체인 북한 목적 수행(간첩), 고무찬양, 잠입·탈출, 회합·통신의 죄에 대한 현행 국보법 조항의 대안을 마련한 것이 그 예다. 예컨대 북한을 위한 간첩행위, 즉 북한 지령을 받아 적국 또는 반국가단체에 군사기밀 등을 넘긴 행위에 대해서는 국보법의 목적수행(간첩) 조항으로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를 폐지할 경우 헌법상 외국도 아니고 외국인단체도 아닌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 등은 그 처벌 대상을 ‘적국(敵國)’으로 한정한 형법상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으며, 또 무리하게 이를 확대 적용하면 법치국가적 명확성과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게 되는 것이다. 또 그렇게 적용하는 순간 그것은 헌법상 불법 정치단체에 불과한 북한을 국가 내지 준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되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게 되는 등 헌법질서에 반하게 된다. 또한 북한 찬양활동, 즉 공공연히 거리에서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해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구호를 인공기와 함께 외친다든지, 또는 길거리에서 하든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선전하는 방식으로 하든 북한 지령을 받아 주체사상을 전파하면서 동조자를 규합하는 행위 등을 형법으로 금지하기는 어렵다. 국보법 폐지에 따른 형법개정안은 폭력을 목적으로 할 때만 내란죄로 적용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공연히 묵인하는 법체계는 민주주의적 정당성이라는 헌법질서에 반한다. 그렇다고, 형법 규정의 확장 해석을 통해 이루려 한다면 그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분단국이었던 독일이 형법에 ‘민주법치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죄’를 두어 체제 전복을 위한 선전·선동을 처벌하는 법제를 가졌다는 점을 좀더 연구해 볼 것을 권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국보법 폐지와 그에 따른 대체입법이나 형법 보완 등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현 국보법 폐지 문제가 이념 대결의 장이 아니라 헌법질서에 기초한 합리적인 논의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출처 - 세계일보 2004. 10. 20 시론